전기코드

1998

긴 복도 아래 밀폐된 구석방에 라텍스로 떠내어진 전기 코드들이 어지럽게 늘어져 있거나 벽에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다. 그것들은 건물의 벽, 건물들 사이, 어김없이 도시 전체를 연결하는 문명의, 과학의, 생활의 전기선이 빠져나간 ‘허물’이다. 이 작가는 일상적 사물에 자신의 심리와 감상을 투사하여 인공의 생물체처럼 만들어 버림으로써 기억의 한 부분들을 ‘의태화’한다. 그녀에게 소통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자기만의 방이라는 ‘비소통의 공기구멍’을 만드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그녀가 생각하는 세상은 섬겨야 할 거대한 신념들로 새겨지는 곳이 아니라 텅 비어져 있어, 특히 사소한 것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일 수 있는 텅 빈 사전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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