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미상SM02전린

1998

한국의 현대식 건물의 입구는 대부분 이중의 유리벽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그 사이는 대개 빛으로 가득 찬 신선하고 투명한 공간이 된다. 서울에서 산 지 18년째 되는 미국인 교수 전린은 동양화와 서예를 공부했다. 전시장의 안과 밖을 연결해 주는 유리벽에 직접 전통적인 서예 기법으로 글씨를 쓰고, 산수화 드로잉을 하여 창밖의 풍경과 글씨, 드로잉이 오버랩되었다. 창에는 먹으로 쓴 ‘당신의 창은 닦아 줄 수 있지만 변기물은 내려 줄 수 없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전통적으로 서예는 사대부 남성들의 영역인 반면, 창문을 닦는 것은 여성의 가사노동의 영역이다. 이 문구는 형식적이고 자기 제한적이며 남성 중심의 영역이었던 서예를 내부에서 ‘위반’하는 행위로, 그녀가 닦아 줄 수 있다는 창문은 바로 세상을 보는 눈의 ‘교정’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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