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현의 작업은 환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동시에 나열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작은 세트를 이용해서 표현하는 공간은 작가가 만들어내는 환상 세계이고, 그 공간에 뚫려 있는 문, 창문 또는 글자 사이의 구멍을 통해 보이는 외부 풍경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의 단상들이다.
그의 작업에서 보여지는 정지된 이미지와 움직이는 이미지, 거인의 세계와 소인의 세계, 만들어진 것과 현존하는 것 사이의 미묘한 공존은 시각적 불편함을 유발한다. 이미 알고 있었던 세계의 풍경이 아닌 인위적으로 조합된 이미지들은 ‘보는 것’에 대한 심리적인 거리감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심리적 거리감은 작가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들과 일치한다. 군중 속에서의 불안감, 이방인과 같은 외로움, 현실 세계와의 괴리감과 같은 일종의 신경증이 고스란히 작업에 투영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남성의 공간과 여성의 공간을 주제로 작업을 하였다. 마치 벽을 세운 듯이 바닥에서 천장을 향해 서 있는 스크린의 앞, 뒷면에 각각 다른 공간이 비춰진다. 이 두 공간은 어떤 모델의 재현이 아니라 현실적 환상의 이미지로 남성과 여성에 관한 자의식의 표현이다. 분리되어질 수 있는 혹은 분리되어질 수 없는 이 두 가지 이미지는 먼저 작은 세트 위에 만들어지게 되고, 이것은 다시 이동되거나 멈춰진 상태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풍경과 함께 비디오로 촬영된다. 앞, 뒷면의 두 개의 이미지에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서로 같은 크기의 통로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가령 두 공간에는 같은 크기의 문이 있으며, 이 문을 통해 보이는 세계는 이 두 공간의 구별되어짐을 혼동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