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풍경

2001

신경철의 작품은 우리로부터 떠나가는, 어쩌면 떠나버려서 다시는 꿈꾸지 못할 그런 기억의 풍경들을 다시 조합하여 우리 앞에 내놓고 있다. 그의 희망대로 우리는 각박해진 현대사회에서 잠시나마 어린 시절의 정다운 추억으로 되돌아가는 그리움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신경철의 〈하얀 풍경 White Landscape〉은 그의 어린 시절에 각인된 창호문과 그 유리창에 대한 심상이다. 창호(窓戶)란 말 그대로 창과 문을 동시에 아우른 것이다. 창의 기능과 문의 기능을 동시에 갖는 우리의 고유한 모습이 창호 혹은 창호문이다. 과거 우리의 모든 집들은 창호가 달려 있었고, 단칸방에 살았던 다수의 도시 서민들과 시골 촌락에서는 안방 창호문 중간에 유리를 붙여 창문을 대신했다. 이 유리창은 사람들에게 세상의 크기와 원근을 재는 척도가 되었고, 인식의 깊이를 여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
이 백색 풍경은 작가의 어린 시절 창호문을 통해서 바라본 추억 속의 환영들이다. 저 빛나는 창호문의 한지는 아주 적당한 조화를 통해 방 안의 말과 방 바깥의 말을 소통시켜 줄 뿐만 아니라, 또 아주 적당한 윤곽으로서 방 안의 형상과 방 바깥의 형상을 융합하여 보여주었다. 인공 조명보다 자연의 조명에 훨씬 아늑하고 포근함을 느끼던 때, 안팎을 오고 가는 빛과 소리가 인간의 정서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때, 자연의 빛과 자연의 소리를 들려주는, 그 단절되지 않는 안과 밖의 교호성을 통해서 새벽 달빛과 그 차가운 겨울숲을 보게 하는 것이 창호문이고, 그 작은 유리창이다. 신경철의 작품은 바로 그것들을 아주 놀랍도록 우리에게 인식시킨다.

— 제6회 신경철 개인전 도록, 진동선(사진평론가) 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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