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지오그라픽

2012

홍성민은 90년대 한국의 바디오아트를 대표하는 작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가 참여했던 1988년의〈뮤지엄 전〉은 한국 동시대미술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2000년대 이후에는 대규모의 전위적 공연을 연출, 기획해오고 있다. 안토닌 아로토의 ‘잔혹극’에 영향을 받은 그는 고급문화와 대중적 엔터테인먼트 속에서 생산되는 상이한 서사들을 차용하거나 패러디 한 퍼포먼스를 통해 아이러니와 유머로 포장된 날카로운 비평적 작품들을 보여주었다. 2009년 5명의 미술가에 대해 5명의 비평가의 글을 5명의 연극배우가 연기하게 한 작품을 선보였던 홍성민은 이 작품 〈Juliettttt〉에서는 5명의 연극배우를 각기 다른 5명의 연출가에게 보낸다. 각기 다르게 훈련받은 5명의 배우들은 로미오를 비롯한 다른 모든 배역들과 무대장치가 사라진 무대 위에서 유사하지만 유사하지 않은 5명의 줄리엣을 동시에 연기한다.
미디어시티서울 2012의 오프닝 퍼포먼스인 〈내셔널지오그라픽〉은 서울시립미술관 인근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외국관광객을 위해 수문장 교대식을 하는 병사들이 무대 뒤에서 쉬는 모습에서 차용된 것이다. 게다가 수문장들이 교대식을 한 후 쉬는 장소 근처에 시립미술관이 있다. 미디어의 특성이 그렇듯 끊임없이 무언가 중요한 사건들이 발생하는 ‘발기되어 있음’의 반대편에 이 퍼포먼스는 존재한다. 내셔널 지오그라픽으로 대표되는 동물 다큐멘터리에서 사자는 늘 먹이를 사냥하는 공격적이거나 활동적인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사실 사자의 시간이란 95% 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무 그늘 밑에 늘어져 있는 모습이다. 작업을 구상할 당시 파업 중이었던 MBC 방송국 직원들을 참조하기도 한 이 작품은 동물다큐멘터리-북청사자놀음-사자되기·태업을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한다.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공식 퍼포먼스 레파토리들 가운데 하나인 사자 탈춤의 사자들이 태업을 벌이는 노동자들처럼 전시장 앞에 누워있는 상황을 연출한 이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사자 코스튬 안에서 일당을 받고 일하는 연기자들의 퍼포먼스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홍성민은 서울지역의 모든 북청사자탈을 불러모아 퍼포먼스 하룻동안은 북청사자춤을 볼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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