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 그라피티, 타이포그라피, 사운드, 디바이스 아트 등 다양한 장르를 가로지르며 활동하는 동갑내기 작가 소 칸노와 타카히로 야마구치가 함께 제작한 〈센스리스 드로잉 봇〉은 일종의 드로잉 생성 기계다. 즉 스케이트보드에 전기장치를 달아 좌우로 왕복하게 만든 구조에 회전하는 신호장치를 달아 추의 움직임을 가속시키는 것이다. 일정 수준을 넘는 자극을 받게 되면 추에 부착된 물감 통에서 순간적으로 컬러 스프레이가 분사되면서 비정형의 선을 그리게 된다. 불규칙하게 생동하는 추가 그려내는 궤적은 멀리는 전통 서예의 준법(皴法), 가까이는 현대적 그래피티의 획들처럼 보이게 한다.
단순한 기계 동력과 신호를 통해 분출되는 그래피티는 역설적이게도 신체적인 제스처를 환기시키며, 잭슨 폴록 식의 실존적 추상 표현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기계 동력을 통해 그림을 그리는 기계장치라는 아이디어는 1955년 장 탱겔리가 선보였던 메타 기계의 계보를 잇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래피티의 속성을 더욱 주요하게 드러낸다. 〈센스리스 드로잉 봇〉은 즉흥성과 우발성, 하위문화의 요소인 반달리즘의 속성을 내장한 움직이는 조각이며 일종의 기계 해프닝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테크놀로지에 의해 ‘의미-없이’ 움직이는 기계 덩어리가 자아내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흥이 이 작품의 흥미로운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