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러스 고든은 이미지 본래의 의미를 재해석하여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의구심을 일으키고, 이미지를 중첩시키거나 변환함으로써 그 이중적 의미들을 탐구한다. 더 나아가 그는 잘 알려진 영화나 영상의 장면을 차용하여 타이밍을 조작함으로써 시간의 흐름을 무너뜨리고 서사적 구조를 전복시켜 관객들에게 심리적 반응을 유도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유혹과 두려움, 삶과 죽음, 선과 악의 이중성과 그 경계를 탐구해왔다.
2008년 프랑스 아비뇽을 방문하여 그곳의 중세 역사와 고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은 작가는 구 교황청을 배경으로 중세 교회에서 금기시되었던 동물들을 모티브로 한 일련의 영상 작품들을 제작했다. 〈내 당나귀와 함께하는 고행〉에 등장하는 당나귀는 중세 교회의 관점에서는 무지와 게으름, 무절제함의 상징으로서 상서롭지 못한 동물이지만, 민간 설화에서는 우스꽝스럽거나 오히려 친근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작가는 중세 시대에 때로는 금기시되고 위협적이지만 동시에 매혹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동물들의 상징성을 현대의 시각에서 재해석하면서 선과 악의 기준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있다. 내러티브가 없는 영상의 전개는 선과 악의 모호한 이중성을 암시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잘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