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진 로드〉는 인간-괴수가 자기 자신과 결혼식을 올리는 과정을 우화적으로 그린다. 로맨스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갈등의 해소와 행복한 결말을 상징하는 클리셰로 활용되어온 결혼식 장면의 젠더 규범을 비틀어, 유혈이 낭자한 B급 고어 영화로 연출한다. 신체가 훼손되는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은 일상적이고 저렴한 재료로 표현되고, 그 뒤로는 상투적인 시각효과, 과장된 음악, 조악한 크로마키 배경 등이 깔리며 공포와 유머 사이를 오간다. 한편 벽에 그려진 〈츄-윙〉은 소리와 동작을 연상시키기 위해 만화에서 사용하는 시각적 어법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영상의 시각적 요소뿐 아니라 청각적이거나 촉각적인 요소에도 주의를 기울이게끔 이끈다. 제목의 ‘버진 로드 (Virgin Road)’는 결혼식 때 신부가 입장하는 길을 따라 까는 흰 융단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