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노트: 강냉이 그리고 뇌 씻기
독일 시인 릴케의 〈시체 씻기(Leichen-Wäsche)〉란 시에는 시체를 닦는 두 여자의 모습이 묘사된다. 이 시에서 그들은 누구인지도 모르는 어떤 남자의 시체를 씻으며 그에 관한 이야기를 지어낸다. ‘죽어서도 새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물체로서의 몸’이라는 시상에서 나는 우선 영감을 얻었다. 그 후, 물로 뇌를 씻는 손의 모습 또는 세뇌의 이미지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렇게 이 비디오를 만들어 갔다.
“난·공·산·당·이·싫·어·요”라는 음절은 남한에서 나와 같이 자라온 세대에겐 익숙한 소리로 남아 있다. 그 소리는 웅변, 구연 동화 및 여러 구술 교육을 통해 특별한 음성을 타고 여러 세대에게 전달되었다. 그 소리의 발성, 음색 및 음량 뒤에는 많은 의미, 기억, 감정이 담겨 있고, 다른 많은 가르침의 소리가 늘 그렇듯이, 관련 세대의 일상생활 자세와 언변 기술, 그리고 정치적 기호에 관습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사람의 입이 훼손되고 그 훼손된 입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입을 통해 전달되는 반어적 상황, 그리고 시대와 공간의 변화에 따라 함께 변화하는(파급, 변형, 또는 소멸되는) 이야기의 영향력과 존재감에 관심을 두고 작업했다.
이 비디오에 출연한 소녀는 이 이야기와 시대적, 지리적, 문화적, 언어적으로 단절된 2000년생 재미 교포 2세고 내 조카다. 이러한 단절된 상황에서, 1968년의 이야기를 번역한다는 이 비디오의 시대착오적 설정 아래 어머니, 남자와 여자, 학생, 어른, 국민, 목소리, 몸가짐, 가르침 등이 지닌 역할을 생각해 봤다. 이런 연유로 다른 문헌에서 가져온 이미지와 이야기를 병치시키게 되었다.
—김성환(dogr과 음악 공동작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