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작가 지문은 단순하고 기능적인 요소들로 건축적 사운드 플랫폼을 만든다. 기계적 리듬과 사운드를 탐구하는 그의 설치 작품들은 특히 일상 속의 산업 오브제들, 나아가 발견된 현상들을 계기로 구현된다. 소재들의 때로는 강박적인 배열을 통해 작품들은 모더니즘의 정연한 패턴 속에 숨겨진 혼란스러운 삶의 힘을 긴장감 있게 보여준다. 감정적 깊이를 잃지 않는 미니멀한 작업 속에서 관객들은 자연적 현상이 만들어내는 울림과 노이즈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나무종 25 마리, 나무, 마이크, 사운드 시스템〉은 버려진 나무토막을 파먹는 좀벌레들을 녹음 및 녹화한 작품이다. 벌레들의 움직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크게 증폭되어 공간을 채운다. 그에 따라 사운드는 거의 촉각적일 정도로 실제적으로 다가오는 데에 반해, 영상을 미동도 하지 않으며 청각적 경험을 끊임없이 배반한다. 존재와 부재, 역동적인 혼돈과 결벽증적 질서가 만들어내는 이 괴리는 관객들에게 역설적 체험을 선사하며. 나아가 하나의 내밀한 소우주를 멀리서 관망하는 듯한 효과를 불러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