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상

2007

데이만타스 나르케비시우스는 주로 영화나 비디오 작업을 통해 리투아니아의 역사—특히 소련에 의한 공산주의 체제 경험과 독립 후 급속한 사회 변화—를 다루는 영상 작품을 제작해왔다. 조소를 전공한 그는 기록 영상, 인터뷰, 애니메이션, 사진 등 다양한 영상 자료와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을 사용해 역사적 실재를 현재적으로 재구축하고 다큐멘터리 장르의 경계를 실험한다.
〈두상〉은 2007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위해 제작된 작품이다. 1990년대 초 공산주의의 붕괴 이후 동유럽 곳곳에서 일어난 기념물 철거 현상을 목격한 작가는, 구 동독 도시인 쳄니츠에서 철거되지 않고 남아 있던 동으로 만든 거대한 칼 맑스의 두상을 전시 기간 동안 뮌스터로 이전시킬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전시 직전에 쳄니츠 시장의 거부로 프로젝트를 실현시킬 수 없게 되면서, 대신 ‘발견된 푸티지’를 가지고 이 두상을 둘러싼 역사적 순간들과 개인의 기억들을 교차시켜 재구성한다. 35 mm 필름 자료들을 편집하여 비디오로 옮긴 이 작업은 장래 희망에 대한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인터뷰, 전후 시기에 강둑에서 평화롭게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조각가 르 커벨의 칼 맑스 두상 제작 과정 기록 영상 및 1971년 두상이 완성되었던 당시 모여든 수많은 시민을 담은 사진 등을 결합하였다.
나르케비시우스는 공산주의 프로파간다의 표상인 모뉴먼트들이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잃은 조형물로 변모하는 과정을 포착하여, 정치와 예술의 역사에 대한 성찰을 무디게 하고 심지어 조작하는 ‘재현의 위기’를 환기시킨다. 그의 초기 계획은 비록 실현되지 않은 프로젝트로 남았지만, 집단적·개인적 기억들을 불러들여 역사의 한 단면을 조각적으로 재구축하고 현재 우리의 위치를 다시금 재고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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