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대 초반 등단한 이제 작가의 초기 작업은 도시 서울의 변화하는 풍경을 보이는 모습 그대로 화폭에 옮겨 그리는 사실주의적 구상 회화에 집중되어 있었다. 6점의 대형 캔버스로 완성된 〈혜화역 3번 출구, 오후 3시〉(2004)는 도시 서울의 특정 장소와 시점을 기록하는 파노라마 풍경화이다. 20년이 지나 지난 그림을 다시 들춰보며 작가는 주변의 동료들에게 도시에 관한 기억과 자신들의 삶에 관한 자유로운 에세이를 적어줄 것을 요청한다. 그림과 텍스트는 무빙 이미지로 재구성되고, 급변하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불안감, 반려견의 죽음을 통한 생의 반추, 공동체의 상실, 일상의 좌절이나 새로운 희망 등 우리 주변의 기억은 추상적이고 공감각적인 사운드로 재편되며, 작가가 말하는 ‘회화하기’로 가깝게 다가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