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금속증

2006

네덜란드 영화 감독 플로리스 카이크의 애니메이션 작업은 허구와 실제를 모호하게 뒤섞는다. 그의 첫 두 단편인 〈전자 목(目)〉과〈악성금속증〉은 일종의 “허구적 정보 제공 필름”으로, 내셔널 지오그래픽으로 대변되는 자연 다큐멘터리의 전형적 형식을 차용한다. 전자 장치에서 진화한 신종 곤충이나, 인공 보철 기구가 유기적 신체를 잠식하는 질병 등과 같은 환상적 소재들은 다큐멘터리 특유의 촬영 및 편집기술, 배경음악, 그리고 정제된 내레이션으로 표현된다. 이와 같이 아이러니컬한 어법을 취하는 작업 속에서 관객들은 기괴함과 유머를 동시에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곤충 진화, 기술 등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세 번째 단편 〈생명의 가원〉에서 디스토피아적 상상력과 만난다. 인간 신체는 하나의 유기적 몸을 구성하는 대신 간단한 행위만을 반복하는 눈, 손가락, 다리 등으로 분절된다. 이들은 개미떼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세상의 잔해 위에 일종의 바벨탑을 세우고자 하지만, 조각난 신체들의 협업은 이내 실패하고 만다. 곤충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떼 지성(swarm intelligence)’ 개념을 차용한 이 작품은 유기적 소통 없이 단순하고 개별적인 요구들만이 존재하는 분업사회에 대한 유쾌한 풍자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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