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비넥 발라드란은 체코의 과거 역사와 관련된 지식과 도상, 서사 등으로부터 비롯된 드로잉 애니메이션, 다큐멘타리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과거의 기록물이나 선전용 영화들, 그리고 낡은 사운드 트랙과 소음들 속에서 발견되는 집단적 무의식을 발굴하는 과정을 통해 그의 작업은 고고학적 성격을 보여주어 왔다.
즈비넥 발라드란의 〈우주의 모형〉은 종이 위에 간단하게 그린 도표들을 통해 세계에 대한 기본적 이해의 원칙들을 설명하는 작품이다. 그가 그려나가는 추상적인 도식과 세계에 대한 정의적 언급들은 그 주제의 거대함만큼이나 급진적인 단순함을 과시한다. 이 작품에서는 이미지와 음성의 관계가 과연 상호 지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서로 다른 현실에 대한 묘사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상황이 제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에 대한 기술의 불가능성이 역설적으로 이 단호한 정의적 선언들의 아름다움에 근거를 제공한다. 발라드란의 이 작품은 보로헤스의 우주와 세계에 대한 허구적 유비들을 떠올린다. 허구적 선언들 속에서 독자들은 그것의 이면에 존재하는 진실의 양상을 엿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