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과 탑

2009

야엘 바타나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상황을 주로 다루는 비디오 작업을 해왔다. 그녀의 작업은 현재의 이스라엘을 이뤄온 사회·정치·문화·역사적 요소들을 출발점으로 삼고, 지속되는 전쟁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서 비롯된 의례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바타나의 정치적인 질문들은 실재와 허구의 결합, 이미지와 사운드의 조작을 통해 시적인 표현으로 다뤄진다.
〈악몽〉과 〈벽과 탑〉은 장차 삼부작으로 완성될 이야기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작품이다. 1930년대 프로파간다 영화의 구조와 감각을 차용한 이 작품들은 세계화 시대의 유대인, 폴란드인, 유럽인 사이의 복잡다단한 역사적, 정치적 관계를 탐구한다.
〈악몽〉은 폴란드 좌파 운동가 스와보미르 시에라코브스키의 연설 장면을 보여준다. 잡초만 무성한 텅 빈 스타디움에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폴란드에서 홀로코스트로 죽은 삼백만의 유대인들을 향해 현재의 침체된 폴란드를 구하기 위하여 유대인들이 복귀하기를 촉구하는 선동적 독백을 펼친다. 그의 연설은 유니폼을 입은 어린이들이 잔디에 흰 가루를 뿌려 가로 새기는 문구 ‘삼백삼십만 유대인들이 사천만 폴란드인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로 대변된다. 이 작품은 폴란드 역사의 가장 근본적인 죄의식이자 악몽 중 하나인 ‘홀로코스트’와 ‘폴란드에서의 유대인 부흥 운동’이라는 작가의 픽션을 혼재시키면서 두 민족 사이의 화해를 촉구한다.
〈벽과 탑〉은 바로 〈악몽〉 속 시에라코브스키의 부름에 대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벽과 탑〉에서 바르샤바로 돌아온 젊은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바르샤바 게토가 위치했던 장소에 새로운 정착지를 활기차게 짓고, 조망탑에는 다비드의 별과 폴란드의 독수리가 결합된 핏빛 깃발을 내건다. 이 작품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사람들의 강력한 영웅적 이미지와 사운드를 통해 시오니스트 드림을 암시한다.

오늘
|
내일
|
스크린은 보호할 가치가 있습니다. 또는 스크린을 보호할 가치를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