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등포구청역에서 한강을 가로질러 서울 시내로 들어가면 2호과 5호선이 교차하는 충정로역에 도착한다. 충정로역에는 조선시대에 출간된 한글 소설 『춘향전』을 모델로 제작된 작업이 설치되어 있다. 『춘향전』에는 이본(異本)이 많을뿐만 아니라 그 명칭도 다양하다. 그리고 『춘향전』은 소설만이 아니라 판소리 넘버로도 유명하고, 영화로도 여러 차례 제작되는 등 한국의 문화 예술에서 끊임없이 회고되는 우리의 고전이다. 이 작품은 총 세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성춘향, 이몽룡, 변학도의 삼각관계를 보여주는 장면, 성춘향과 이몽룡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 그리고 색색의 전선줄을 사용하여 성춘향과 변학도의 형상을 드로잉처럼 표현한 장면이다. 각 인물의 목 부분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작가가 직접 녹음한 목소리가 재생된다. 작품에서 전선줄로 재현되는 고전의 장면들은 정보화된 시대의 산업과 기술을 상징하고, 이와 대치되는 자연 회복, 삶의 질, 생태에 대한 관심은 『춘향전』의 암행어사 역할로 비유된다. 지하철역사에서 마주하는 『춘향전』의 장면들은 행인들이 잠시나마 우리 고전을 생각하게 하고, 동시에 산업과 기술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 스스로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거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