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는 영혼들

2012

평온해 보이는 사회, 나날의 일상. 니나 피셔와 마로안 엘 사니는 특히 근대 이후 확립된 사회의 무의식적인 여러 층들에 주목해 왔다. 근대라는 시스템은 과거를 부정하고 미래를 향해 갱신해 나감으로써 성립한다. 근대에서 추방된 유, 무형의 잔재들은 도처에 부유하고 있다. 니나 피셔와 마로안 엘 사니는 이 잔재들을 ‘유령’이라 부르며 소환하는 작업을 해 왔다. 주 활동지인 베를린에서는 특히 1989년 이후 생겨난 사회주의 시대의 폐허에 관한 작업을 발표해왔으며, 일본에서는 지난 15년 동안 몇 번이나 머물며 아이돌이나 군함섬, 나리타공항 등을 다뤄왔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은 정치적인 의사표명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나 현장에 밀착하여 일상의 정치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나아가, 이 작업을 떠받치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신념은 미래는 우리 각자가 여전히 배회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와 기억의 유령과 대면하고 반성할 때 비로소 창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작업은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제 1 원자력 발전소 사고 뒤 일어난 일들을 다룬 것으로, 이 속에 담긴 일본은 그들이 지금까지 관계를 맺어온 일본과는 다른 공간이다. 그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후쿠시마의 상황이 아니라, 3. 11 대지진이 후쿠시마 이외의 지역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일상에 미친 변화를 작품에 담아낸다. 작품이 담아낸 사람들의 말, 여러 장소, 그리고 사람들이 미래를 생각하며 눈을 감고 있는 사진에는 과거와 미래가 단절되어 생긴 빈 공간(Tabula Rasa)과 그들이 그곳에서 걸었던 걸음이 새겨져 있다.
일본에게 3월 11일 대지진은 명확한 균열 지점이며, 이 나라가 누려온 근대 시스템의 파탄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위기로부터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까? “눈을 감은 영혼들”: 왜 “유령”이 아닌 “영혼”인가? “눈을 감는다는 것”은 현실에 대한 외면인가, 미래를 위한 기원과 의지인가? 작품의 제목은 감상자에게도 미래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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