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작 〈킨더가든 안토니오 산타 알리아, 1932〉 에서 2008년 작 〈알제의 행복한 순간의 단면들〉에 이르기까지 데이비드 클레어바우트 작품들은 사진과 영화의 포착하기 어려운 연결 지점을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다. 회화와 드로잉으로부터 출발한 이 벨기에 출신 작가는 흑백사진을 대형 프로젝션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이미지에 기적적인 시간성을 부여하는데 성공했다. 정지된 흑백사진의 풍경 일부가 알아채기 힘들만큼 미세하게 흔들리면서 영원히 정지된 것 같던 대상의 시간성이 부활하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된다. 〈알제의 행복한 순간의 단면들〉는 전작의 구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 무대를 알제의 어느 바닷가 건물 옥상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 명씩 모두 따로 촬영되어 나중에 하나의 이미지로 모아놓은 것이다. 인물들로부터 하늘을 나는 갈매기들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시간과 시점들은 모두 조합된 것일 뿐 아니라 무한히 변주될 수 있는 것이다. 클레어바우트의 작품은 한 이미지가 함축하는 잠재적 시간의 추상성을 마치 개별적인 톱니바퀴들의 조율된 운동처럼 구체화한다. 지중해를 내려다보는 알제 카즈바 지역의 한 지붕 위에 있는 작은 축구장 사진 600여 장으로 이루어진 이 동영상은 그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정지된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만들어내는 서사적 구성을 보여준다. ‘행복한 순간’을 기록한 이 일련의 이미지들에는 ‘의심스러운 시선’을 들이댐으로써 특정한 인종 집단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내려는 작가의 야심이 반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