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탑

2023.09.04 – 2023.09.04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퍼포먼스 〈땅탑〉. 작가: 이끼바위쿠르르. 서울시립미술관 마당. 2023. 09. 04. 사진: 글림워커스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퍼포먼스 〈땅탑〉. 작가: 이끼바위쿠르르. 서울시립미술관 마당. 2023. 09. 04. 사진: 글림워커스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퍼포먼스 〈땅탑〉. 작가: 이끼바위쿠르르. 서울시립미술관 마당. 2023. 09. 04. 사진: 글림워커스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퍼포먼스 〈땅탑〉. 작가: 이끼바위쿠르르. 서울시립미술관 마당. 2023. 09. 04. 사진: 글림워커스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퍼포먼스 〈땅탑〉. 작가: 이끼바위쿠르르. 서울시립미술관 마당. 2023. 09. 04. 사진: 글림워커스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퍼포먼스 〈땅탑〉. 작가: 이끼바위쿠르르. 서울시립미술관 마당. 2023. 09. 04. 사진: 글림워커스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퍼포먼스 〈땅탑〉. 작가: 이끼바위쿠르르. 서울시립미술관 마당. 2023. 09. 04. 사진: 글림워커스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퍼포먼스 〈땅탑〉. 작가: 이끼바위쿠르르. 서울시립미술관 마당. 2023. 09. 04. 사진: 글림워커스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퍼포먼스 〈땅탑〉. 작가: 이끼바위쿠르르. 서울시립미술관 마당. 2023. 09. 04. 사진: 글림워커스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퍼포먼스 〈땅탑〉. 작가: 이끼바위쿠르르. 서울시립미술관 마당. 2023. 09. 04. 사진: 글림워커스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퍼포먼스 〈땅탑〉. 작가: 이끼바위쿠르르. 서울시립미술관 마당. 2023. 09. 04. 사진: 글림워커스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퍼포먼스 〈땅탑〉. 작가: 이끼바위쿠르르. 서울시립미술관 마당. 2023. 09. 04. 사진: 글림워커스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퍼포먼스 〈땅탑〉. 작가: 이끼바위쿠르르. 서울시립미술관 마당. 2023. 09. 04. 사진: 글림워커스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퍼포먼스 〈땅탑〉. 작가: 이끼바위쿠르르. 서울시립미술관 마당. 2023. 09. 04. 사진: 글림워커스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퍼포먼스 〈땅탑〉. 작가: 이끼바위쿠르르. 서울시립미술관 마당. 2023. 09. 04. 사진: 글림워커스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퍼포먼스 〈땅탑〉. 작가: 이끼바위쿠르르. 서울시립미술관 마당. 2023. 09. 04. 사진: 글림워커스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퍼포먼스 〈땅탑〉. 작가: 이끼바위쿠르르. 서울시립미술관 마당. 2023. 09. 04. 사진: 글림워커스

이끼바위쿠르르(고결, 김중원, 조지은)의 시각 연구는 이주의 속성을 파헤쳐온 오랜 경험에 기반을 두고 발전해 왔다. 이들의 작품활동은 1990년대 후반 국내 유입된 외국인 이주 노동자와 공동체와 협업을 중심으로 시작했고, 점차 그 관심 주제를 개발에 따른 식물의 이동으로 확장하며 식물과 인간의 디아스포라, 산업 문명과 자연현상 등의 상관관계 탐구에 집중하고 있다. 그룹명 이끼바위쿠르르는 이끼 낀 바위를 뜻하는 ‘이끼바위’와 의성어 ‘쿠르르’가 합쳐진 인공어이다. 이끼는 바위산 비탈처럼 도저히 식물이 자랄 수 없을 법한 곳까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환경에서 서식한다. 뿌리가 없기 때문에 낯선 땅에 던져져도 쉽게 번식하고, 놀라운 회복력을 발휘하며 극한의 조건에서도 살아남는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땅탑〉은 이끼바위쿠르르가 탐구해온 예술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 흙을 빚어 세운 기념비들이 미술관 뜰에 세 개의 군을 이루고 선 모습은 작은 마을이나 신도시를 연상시킨다. 재료로 쓰인 흙은 수도권 위성도시 외곽에서 채집한 먼지와 쓰레기가 섞인 흙이다. 공단이 밀집해 있던 수도권 도시들은 한때 이주 노동자의 보금자리였으나, 이제는 그 자리에 아파트 단지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부동산 재개발로 인해 노동자들은 살 곳을 잃었고, 그들의 공동체는 해체되었다. 삶의 터전을 잃은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건설업자들은 주택 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거침없이 나무를 뽑거나 베고 있고, 개중에는 수령이 백 년에 달하는 나무도 종종 있다. 이끼바위쿠르르는이 작품에서 공동체와 나무를 연결해주었던 흙을 도심과 같은 낯선 장소로 옮겨오고, 이를 통해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과 비인간 개체와 공동체의 이동,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이주의 현실과 삶의 관료주의적 경계에 관한 서사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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