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깃줄은 한국의 대도시를 특징짓는 인상적인 풍경을 만든다. 전깃줄은 대개 놀랍도록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주로 까치와 참새 등이 줄 위에 앉아 있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전선의 피막 속을 빠르게 통과해가는 강력한 전기 에너지를 상상해보면, 새들이 앉아 있는 한가로운 풍경도 곧 위험이나 재난에 임박한 위태로운 놀이로 보인다. 새나 비닐봉지와 같이 일시적이고 유약한 존재와 대도시를 끊임없이 회전시키는 강력한 욕망-기술의 정글 사이에서, 작가는 상충하는 심미적 가치의 불안한 공존을 본다. 검은 비닐봉지들은 덧없는 세계에 대한 슬픈 관조와, 멈출 수 없는 문명의 속도 사이에서 떨리고 있는 것 같다. [최승훈 + 박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