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메나 가리도-레카는 각기 다른 사회·문화·지리적 경계로 나뉜 인간 집단이 자연을 착취하고 지배하면서 생겨나는 불평등한 권력 구조와 그 영향에 관해 탐구한다. 〈프로토몰피즘(최초의 형태): AGC로프 드라이버 모듈〉은 데이터 저장 기기의 원형과 컴퓨터 산업이 인간의 오랜 수공 기술인 직조에 기초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작품명의 AGC는 1969년 유인 달 탐사를 가능케 했던 초기 컴퓨터 모델 아폴로 가이던스 컴퓨터를 가리킨다. 작품의 구조는 아폴로에서 사용한 기존의 회로 테스트 보드를 기초로 만들어 졌다. 전자 엔지니어와 협업을 통해 작가는 기존의 컴퓨터에서 글쓰기를 생산하던 아폴로 가이던스 컴퓨터의 설계도를 활용하고, 컴퓨터의 구리선을 알파카 울, 솜, 양모 등으로 대체하였다. 초창기 컴퓨터의 데이터 저장을 위한 ‘로프메모리’는 마치 베를 짜듯 사람이 직접 손으로 도선을 엮어 만들어졌다. 여성은 이러한 로프메모리 직조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이들은 로프 어머니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작가는 로프메모리 여성 노동자들을 잉카 문명의 마마 킬라, 아즈텍 문화의 코욜사우키, 마야 문명에서 달과 직물의 여신 익스첼 등 스페인 정복 이전 문화의 여성 수호자들과 중첩해서 사유한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서구와 남성 중심의 산업화를 거쳐 만들어진 동시대의 기술 문화와 범지구적인 보편성을 여성 노동자의 손 기술이나 인류 문명의 수호자와 같은 오래된 지식 체계와 연결 지으며 새로운 사고의 방식을 촉구한다. 나아가, 작품은 직조와 같은 원초적인 인간의 기술이 과학과 서구문명 발전의 초석이 되었음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