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팡이〉는 오늘날 영화와 게임 등에서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함께 점점 더 광범위한 위력을 보이는 특수효과와 관련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자본의 집중에 의해 가능한 컴퓨터 그래픽이나 3D 등의 기술이 그렇듯 지각의 극단적인 자극이나 스펙터클의 최대치를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이 작업은 영화사를 통해 발전했던 특수효과의 많은 장면들, 혹은 맥락을 최대한 참조하고 전유하되 그것을 동시대 특수효과의 발전 방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다시 돌아보고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내가 볼 때, ‘지팡이’는 특수효과라는 하나의 현상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특수효과가 등장하는 많은 영화들에서 지팡이는 이동 불가능한 것을 움직이고, 갇혀 있는 에너지를 해방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또 그런 힘을 갖고 있거나 다룰 수 있는 사람들(마법사나 도사, 예언자나 도력이 큰 스님 등)의 물건이다. 그것은 하늘과 자연의 어떤 기운과 인간을 연결시키고 시간을 지연시키거나 확장시키며, 비존재(귀신이나 영혼 등)들을 불러내거나 눈앞에서 지운다. 이 밖에도 수많은 역할을 하는 지팡이를 우리는 상상해볼 수 있다.
어쩌면 모든 사람들의 소유여야 할 지팡이가, 왜 특수효과 산업의 전유물이어야 할까? 나는 사람들이 극장 안에서 특수효과에 대해 단순히 수동적인 관객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지팡이를 영화적 공간에서 탈취하여 기술적 형상으로서의 특수효과 그 자체를 사라지게 하거나, 지팡이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경우를 가정해본다. 그래서 자본과 스펙터클과 속도의 점입가경에서 한 발짝 물러나 하늘과 자연의 힘, 비가시적인 것 혹은 세계에 대한 열정을 다시 불러낼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작업 〈지팡이〉를 통해 역설적이긴 하지만, 가시적 특수효과가 사라진 시공간에서 어떤 다른 종류의 특수효과를 상상한다. [노재운]
‘지팡이’, 2014. 혼합 매체. 가변 크기. SeMA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4 커미션. 작가 제공
‘특수 효과의 벽’, 2014. 벽면에 아크릴 거울. 가변 크기. SeMA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4 커미션. 작가 제공
‘프레임 웍스-뇌사경’, 2014. 혼합 매체. 가변 크기. SeMA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4 커미션. 작가 제공
‘극종’, 2010. 철판, 갈고리, 체인으로 제작된 글자. 30 × 59.5 × 1 cm. 작가 및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이 세상은 피의 바다’, 2009. 아크릴 패널에 투명 안료. 28 × 180 × 2 cm. 작가 제공
‘어떤 귀신은 사람보다 낫고 어떤 사람은 귀신보다 더 나쁘다’, 2009. 아크릴 패널에 투명 안료. 29 × 190 × 2 cm. 작가 제공
‘클라투 바라다 닉토’, 2011. 아크릴 패널에 투명 안료. 29 × 190 × 2 cm. 작가 및 리움미술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