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상은 한 마술사가 등에 기묘한 작은 사람 모양의 인형을 업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후 마술사가 인형을 데리고 돌아다니면서 마술과 최면 공연을 선보이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잠을 자는 등의 행적이 전개된다. 또한 그 사이 사이로 남부 레바논의 깊은 골짜기나 한적한 길이 뒤섞여 등장하며, 마을 입구 도로변 공공 광장에 설치된 기하학적 모양의 기념비가 중간 중간 카메라에 잡히기도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마술사는 무대에서 내려와서 걷다가 사라져 버리는데, 그 자신의 사라짐이 마치 마지막 마술인 듯 보이기도 한다. 37분에 달하는 이 영상은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나 분명한 의미를 전달하는 대신 우리를 마술, 환영, 신화와 같은 세계 속으로 이끈다. 그리고 이러한 영상의 풍부한 이미지에 비해 자막으로 전달되는 텍스트는 매우 간결하고 시적이다. “지리적으로 남부에 위치한 그 곳에서는 모든 것들이 다양한 의미로 읽힌다. […] 시간은 지나가도 사건은 순차적으로 읽히지 않는다.”와 같은 내용은 더 많은 여러 갈래의 읽기를 가능하게 한다.
“마술은, 몸을 분리하거나 각 부분들을 하나로 모아 행위가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 통합시키지 않은 채, 몸 위에 몸을, 몸으로부터 몸을 만들어낼 수 있다. 사실 이것은 정확히 말하면 신화의 경우에 해당하는 얘기로, 여기에서 파워는 지배당하는 몸들을 타깃으로 한다. 그것들은 통로로 들어갈 수도, 그 자리를 떠날 수도 없이,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고, 팔 다리 조직은 고정되어 있다. 그래서 규모가 확장되면서 구분된 조직 가운데 하나를 향해, 또 그 요소들이 외부 세계(이를 테면 음식이나 음료)와 맺는 관계—즉 위(胃)—를 향해 안으로 퇴각해간다.” (로저 아우타, 「종말의 성장과 그 위험에 대하여」, 제12회 샤르자비엔날레 도록,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