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병소는 언어의 영역이면서 개념의 영역인 현대미술을 여러 방식으로 실험했고, 일련의 실험 기록이 되는 작품이 비디오, 사진, 설치 등의 형태로 구성된다. 1980년대 대구에 있던 작업실에 홍수가 나면서 보관 중이던 많은 작품을 유실했고, 〈무제 9750000-2〉는1970년대 제작품에서 남아있는 두 작품 중 하나이다. 네 장의 사진에는 동일한 모양의 의자가 보이고, 의자에 놓여있는 사물을 지시하는 알파벳 단어가 쓰여 있다. 그리고 작품에서는 사진이 전달하는 시각 정보와 문자 정보간에 야릇한 의미의 거리가 생겨난다. 문자가 더해진 이미지가 낯설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건, 사물을 지시하는 텍스트의 형태(기표)가 문자의 의미(기의)와 분리되며 생겨나는 생경함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