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반 나바로는 칠레에서 보낸 유년 시절 독재 정부에 의한 저녁 시간대의 전력 차단과 통행 제한을 경험한 바 있다. 작가는 이 시절의 통제와 자유에 대한 갈망을 직접적으로 얘기하기보다는 주로 빛을 내고 그것을 반사하거나 확대하는 네온, 거울, 유리, 형광등을 이용한 작업을 통해 우회적으로 얘기한다. 이 중에서도 초고층 건물을 바탕으로 한 네온 조각들은 우리 머리 위로 우뚝 솟은 건물들을 올려다보는 대신 무한한 깊이를 가진 공간을 들여다보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콘크리트나 철이 아닌 네온, 거울, 유리로 만들어진 조각들은 저 높은 하늘을 향해서가 아니라 벽이나 바닥을 향해 설치되어 실재 공간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미국 9·11 테러 당시 무너진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을 바탕으로 제작된 〈무제(쌍둥이 빌딩)〉은 두 개의 정사각형 형태로 제작되어 바닥에 설치되었으며, 거울과 일방 투시 거울 사이에 조명을 끼워 넣어 조명이 끝없이 반사되도록 한 작업이다. 빛을 다루지만 어둠 또한 담고 있으며, 무한히 확장되는 듯 보이지만 공간 안에 갇혀있는 이반 나바로의 작업들은 미래를 향한 희망과 어두운 과거와 현실에 대한 고발을 동시에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