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색채 선언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색채 선언
분류 에세이
에디션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저자 안톤 비도클, 할리 에어스, 루카스 브라시스키스, 사나 알마제디, 벤 이스텀, 논플레이스 스튜디오, 콜렉티브
색은 부차적인 것이 아닙니다.1
우리는 색이 보조적이거나 장식적이거나 그저 심미적인 것이라는 가정을 거부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색은 근본적인 것입니다.
색은 구조, 논리, 방향, 경험을 형성합니다.
색은 예술, 건축, 큐레토리얼의 주요 도구입니다.
우리는 중립적인 공간을 거부합니다.2
흰 벽, 회색 바닥, 미니멀 디자인 등으로 이루어진 동시대 미술 공간의 언어는 분리, 통제, 획일성으로 정의되며, 그 본연의 가치를 감추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로 인해 말소되고, 그것이 투영하는 권위에 반대합니다.
색은 경험의 매개체입니다.3
색은 언어에 앞서 직접적으로 소통됩니다.
색은 정동을 불러일으키고, 기억을 형성하며, 관심을 조직합니다.
연대기, 범주, 지리에 의존하지 않는 주제적 관계의 출현을 가능하게 합니다.
우리는 전시를 구성하기 위해 색을 사용합니다.4
이 비엔날레의 구성은 유형학, 원리, 장르에 기반을 두지 않습니다.
색채와 주제 영역으로 구성됩니다.
이러한 영역들은 공명과 공유되는 방향을 통해 작품들을 묶습니다.
자홍색, 녹색, 보라색, 파란색은 상징이 아닌, 영역으로서 공간적 명제가 됩니다.
그라데이션은 전환을 대체합니다.5
우리는 아이디어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대신, 아이디어가 움직이고, 섞이며, 흐르게 합니다.
색의 그라데이션은 투과성을 나타냅니다.
개념적 경계는 울타리가 아니라, 문턱으로 간주됩니다.
색상은 정치적입니다.6
색이 형태에, 감각이 이성에 종속됨은 식민지적, 가부장적, 합리주의적, 기술 관료주의적 등 추출의 체계를 반영합니다.
색을 중심을 두는 것은 이러한 체계에 도전하고, 중립성과 위계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순수한’ 색이란 없습니다.7
색은 시간적이고 불안정합니다.
지각은 시간, 빛의 조건과 관람 시간에 따라 달라집니다.
두 관객이 같은 색을 같은 방식으로 접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러한 불안정성은 전시 논리의 일부이며, 관객의 주의와 참여를 유도합니다.
색은 구체화됩니다.8
이 전시는 단지 시각적이기 보다는, 관객이 직접 탐색하게 합니다.
색은 움직임을 유도하고 분위기를 조성하는 공간적 경험이 됩니다.
관객은 단순히 색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색을 통해 움직입니다.
색은 치유적입니다.9
색은 신경계에 영향을 미치며, 에너지, 주의, 감정을 조절합니다.
색은 색채 요법, 스테인드글라스, 광물 안료, 성스러운 건축과 같은 치유 의식에서 사용됩니다.
이번 전시에서 색은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재균형과 재조정을 위한 조건을 제공합니다.
색은 제도적이지 않습니다.10
색의 사용은 단순한 그래픽 아이덴티티만이 아닙니다.
장식이나 분위기 연출을 위한 것만도 아니며, 관습적인 전시 공간을 구체화하는 것도 아닙니다.
감각, 관계, 물질적 지각을 통해 사유하는 인식론적 선택입니다.
색은 구조입니다.11
색은 전시를 감싸는 틀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를 구성하는 요소입니다.
이 전시에서 색은 작품을 연결하고, 공간을 정의하며, 전환을 표시하고, 의미를 생성합니다.
색은 단순히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필수적인 것입니다.
– 안톤 비도클, 할리 에어스, 루카스 브라시스키스, 사나 알마제디, 벤 이스텀, 논플레이스 스튜디오, 콜렉티브.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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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서의 영성에 관하여』(1911)에서 바실리 칸딘스키는 색이 내면 경험의 직접적인 작동체라고 주장했다. 그는 색상의 재현성과 무관하게, 색마다 고유의 감정적이고 영적인 효과가 있다고 보았다. 바우하우스에서 활동에서 그는 색을 시각 커뮤니케이션의 표면이 아닌 근본적인 구조적 요소로 다루는 원칙을 디자인과 교육학으로 연결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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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코르뷔지에의 『다채로운 건축』(1931/1959)은 수십 년 동안 모더니스트가 억눌러 왔던 색을 건축의 기능 요소로 재도입했다. 그는 감정적이고 공간적인 경험을 이끄는 ‘색의 건반’을 제안하였고, 화이트큐브의 중립성이라는 신화에 도전하였다. 같은 시기, 테오 반 되스버그와 같은 예술가들과 데 스틸과 같은 예술 운동들은 원색을 그저 표면이 아닌 공간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질서의 원리로 제시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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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학의 창시자 루돌프 슈타이너는 색이 윤리적이고 영적인 차원을 가진다고 가르쳤다. 그는 서로 다른 색조가 영혼의 고유한 가치를 반영한다 믿었고, 이것이 예술적 실천, 교육, 환경을 통해 함양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회화와 건축 지침에서 색상은 내면적 성장과 우주적 질서를 전하는 매개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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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하우스에서는 색을 통해 사람들이 공간과 의미를 이해하는 방식을 새롭게 구성했다. 요제프 알버스와 같은 인물들은 맥락에 따른 색의 변화가 투명성, 깊이, 움직임과 같은 환성을 만들어내는 관계적 지각을 강조했다. 한편, 색은 힌네르크 쉐퍼와 같은 건축가들은 사람들이 구축된 환경 내에서 움직이고 느끼는 방식을 형성하는 색채 공간 시스템을 개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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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라사 이론, 중국의 오행(五行), 일본의 가사네 노 이로메(계절의 중첩)와 같은 전통적인 비서구적 색채 체계는 색을 시간, 우주관, 감정과 연결된 관계적이고 상징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여러 아프리카 문화에서 색은 의사소통적이고 영적인 코드로 작용한다. 콩고의 코스모그램(우주도형), 요루바 인들의 오리샤 색채 조합, 줄루 인들의 구슬 공예에서 색은 정체성, 신의 존재나 사회적 관계를 나타낸다. 이러한 체계들은 고정된 색조가 순수한 형태가 아니라 점층성, 상호의존성, 기능성을 강조한다. 색은 미적인 것이 아니라, 우주론적이고 언어적이며 기능적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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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베전트와 C.W. 리드비터는 1901년 『상념체』에서 생각과 감정이 훈련된 투시자가 볼 수 있는 색채 에너지의 형태로 방출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이러한 색깔 형태는 특정한 영적, 정서적 의미를 지닌다. 예를 들어, 분노는 검붉은색, 열망은 연보라색으로 나타나는 식이다. 이들의 신지학 체계는 칸딘스키, 몬드리안, 힐마 아프 클린트를 포함한 초기 모더니스트 예술가들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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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색채론』(1810)은 색이 객관적인 파장만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인지되는 빛과 어둠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발생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색채 지각의 주관성과 가변성, 즉 대기, 감정, 생리적 조건이 시각적인 것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강조했다. 괴테에게 색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경험적이며, 맥락과 주의에 따라 변화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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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학과 탄트라의 건축 전통에서 색은 장식이 아닌, 기분, 지각, 행동을 조절하는 공간적 힘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체계에서 사람들은 단순히 색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생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색의 감흥을 받는다. 관람객의 공간 이동은 색채적 단서에 의해 형성되는 체화된 인식의 형태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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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 요법은 색상이 장기, 기질, 에너지에 응대한다는 아유르베다, 이집트, 이슬람의 고대 치유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 전통에서 오방색(五方色)은 요소, 계절, 방향에 다섯 가지 기본 색인 청록색, 적색, 황색, 백색, 흑색을 할당한다. 이러한 색상은 균형, 보호, 에너지 정렬을 위한 도구로 의식용 건축(단청), 의복, 무속 실천에서 나타난다. 신지학과 인지학 같은 20세기의 신비주의 운동에서 색상은 지각, 주의, 내면의 삶을 치유하는 수단으로 발전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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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정체성’으로서 색상은 마케팅과 제도적 브랜딩에 관련된 최근의 발명품이다. 이에 반하여 바우하우스와 절대주의를 포함한 20세기 초 아방가르드는 색상을 형태, 지각, 의미를 생성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오늘날에도 유사한 구조적 색상 사용이 일부 비서구적 의례 건축에서 지속되고 있으며, 색상은 우주론적 또는 에너지 체계에 따라 공간을 구성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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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클랭의 ‘인터내셔널 클랭 블루’는 단순한 시그니처 색상이 아니라, 색이 형태와 무관하게, 즉 존재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명제였다. 클랭은 색을 사건, 즉 지각을 형성하는 비물질적인 실체로 다루었다. 그의 작업은 색을 그 자체로 의미와 감각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재구성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