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치〉에는 보행자 신호가 켜진 횡단 보도 위에서 횃불로 저글링을 하는 두 명의 사람이 등장한다. 이들은 차량 통행 신호로 바뀌면 저글링을 멈추고 각자 반대쪽 보도로 흩어지며, 멈춰 서 있던 차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달린다. 신호가 바뀔 때마다 저글링을 하는 사람들은 두 명에서, 네 명, 여섯 명, 여덟 명으로 늘어난다. 그리고 마지막 여덟 명이 차량 통행 신호에도 움직이지 않고 저글링을 계속하자 조용했던 자동차들은 요란하게 경적을 울리며 그들 사이를 밀고 지나가려는 듯 위협적으로 움직이기까지 한다. 저글링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점점 밝아지는 불빛과 이들이 신호에 맞춰 움직이지 않기 시작하자 커지는 경적 소리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사회의 질서정연한 체계에 균열이 일어났을 때를 상상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