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이 넘치는 신세계〉는 ‘판소리’를 관통하는 특유의 전통미학과 연희적 성격에 기대고 있다. 공연은 판소리 다섯 마당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춘향가’의 사설과 창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지만, 이 전형적인 낭만적 서사의 전개 속에 시종일관 당대의 계급의식을 뒤흔드는 부단한 투쟁이 담겨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춘향가’의 계급투쟁은 여성에게 강요된 절대 선이자 성별 역할인 ‘일부종사’를 담보함으로써 한 발 뒤로 물러서 있는데, 공연은 ‘계급투쟁’을 도모하기 위해 포기한 척하는 ‘성별투쟁’으로 점차 관심을 옮긴다. 거의 귀신의 흐느낌에 가까운 애통한 자기고백적 소리를 통해, 춘향이 쉴 새 없이 폭로하는 이 근본적 취약성, 즉 춘향의 딜레마와 분열증을 포착한다. 이 공연에 등장하는 다섯 배역인 재담꾼, 고수, 학자, 소리꾼, 여성국극배우는 각각 판소리 연희의 중요한 형식적 요소인 서사, 장단, 이면(의미), 창, 수행의 현현이다. 판소리의 형식적 분화를 통해 얻어낸 각 인물의 특징은 그들 각각의 수행을 통해 변형되고 다시 구성된다.
이 작품은 ‘감정의 공동체’로서의 이상적 공동체를 제안한 19세기의 공상적 사회주의자 샤를 푸리에(1772~1837)의 동명의 논고로부터 영감을 받았고, 아시아예술극장의 지원으로 제작, 공연되었으며, 〈미디어시티서울〉 2014의 도움으로 새롭게 수정, 제작되었다. [정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