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날레와 디자인)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사전프로그램(프리비엔날레)은 지난 사전프로그램(2022)과의 연속성을 가지며, 미디어에 관한 개념적 연구, 비엔날레의 정체성과 지역적 연계성을 탐구하기 위한 내용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본 인터뷰는 최근 10여년 간의 비엔날레 경험에 초점을 맞춰, 변화해간 동시대 현장에서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 주신 전문가들을 초대하고 기록하고자 합니다.
2018년에 개최된 《좋은 삶》은 처음으로 단일 예술감독 체제가 아닌, 미술 외 분야에서 활동하는 여러 전문가로 구성된 디렉토리얼 콜렉티브로 치러졌습니다. 현대미술이라는 범주를 넘어 비엔날레를 통해 예술, 경제, 환경, 정치, 사회, 기술 등을 폭넓게 다루며 관객들과 더욱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소통하는 열린 전시를 목표로 하였습니다. 다양한 개념과 아이디어를 수렴하여 시각적 결과물로 생산하는 비엔날레 디자인은 회차별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중요한 매개/미디어 입니다. 제10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박연주 디자이너와 인터뷰를 통해 2018년의 비엔날레가 어떻게 기능하고 구현되었는지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SMB 비엔날레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박연주 디자이너가 이 일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를 먼저 듣고 싶습니다.
박연주 1995년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곧바로 디자인 스튜디오에 취업을 했어요. 그곳에서 디자이너로 8년 정도 일을 했습니다. 사실 스튜디오에서 일한 지 5-6년쯤 지나면서부터 일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어요. 의뢰인과 디자인을 시안을 가지고 밀고 당기는 과정의 힘듦이 작업할 때의 즐거움을 넘어서고 있었고, 또 만들어 놓은 결과물들을 보면서도 ‘내가 쓰레기만 만드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어요. 비슷한 즈음에 읽게 된 네오 러다이즘(Neo-Luddism), 반자본주의(Anti-Capitalism)에 관한 책들과 ‘중요한 것 먼저(First Things First)’ 선언 같은 것에 완전히 꽂혀 있기도 했고요. 시골로 들어가 자급자족하며 사는 삶을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였는데, 그러기엔 제가 너무 젊고 욕망이 크다라는 사실을 깨달았죠. 2-3년 정도 더 버티며 회사를 다니다가 무언가 목까지 꽉 차올랐을 때 그만두게 됐습니다. 2004년에 대학원에 진학했고, 학업을 마친 이듬해인 2007년에 제 스튜디오를 열었습니다. 디자이너로 독립을 하게 된 거죠.
SMB 2009년부터 헤적프레스라는 독립 출판사를 운영하고 계시고, 최근에는 제8회 타이포잔치 예술감독을 맡아 타이포그래피를 전시 콘텐츠의 중심으로 가져오셨습니다. 일반적인 디자이너의 활동영역을 확장시킨 실천에 대해 더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박연주 2007년에 스튜디오를 열고 나서 전시 도록이나 작가들 작품집 디자인을 종종 의뢰받아 작업하면서, ISBN 없이 만들어지는 책들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런 인쇄물 중 일부를 공식적인 기록이 남는 출판물로 만들어 보고 싶어서 2009년에 헤적프레스라는 이름으로 출판등록을 했습니다. 2012년에 헤적프레스의 첫 출판물이 나왔고, 2013년 즈음에는 당시에 친하게 지내던 정희승 작가에게 같이 출판물을 기획해 보자고 제안했어요. 그렇게 해서 2014년 『플로트』 시리즈 첫 호가 나오게 됐고요.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 정희승 작가와 함께 헤적프레스 출판을 만들어 가는 중입니다.

타이포잔치 2023 예술감독은 조직위원회의 위촉으로 맡게 되었는데, 작년에 타이포잔치를 만들고 나서 디자인, 출판, 전시를 만드는 일의 원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어요. 제가 타이포그래피 작업을 하거나 책을 만들 때 항상 구조를 짠다고 생각하는데, 구조를 짠다는 것은 구성 요소들 간의 관계를 설정하는 일이잖아요. 구성 요소를 찾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생각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것 같습니다. 디자이너로서 활동의 확장은 확장 그 자체 보다는 스스로 정체되지 않기 위한 고민들을 하던 시점에 저에게 주어진 여러 기회들을 운 좋게 잘 포착한 덕분인 것 같습니다.
SMB 참여하셨던 10회 비엔날레(2018)는 무용평론가, 미술 기획자, 출판인, 경제연구자로 구성된 공동 예술감독 체제였죠. 여러 다른 의견과 방향성을 모아 하나의 공통된 디자인 언어를 개발하는데 디자이너의 역할이 중요하고 또 그에 따른 어려움도 많았으리라 짐작합니다.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나요?
박연주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주변의 작가나 지인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현대미술 분야의 디자인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비엔날레 디자인은 2018년이 처음이었고, 저에게는 큰 과업이었습니다. 미술관에서 포트폴리오를 요청해서 보내 드렸고, 얼마 후에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디자인에 관한 최종 의사 결정을 누가 하는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공동 예술 감독 체제라서 어떤 방향을 설정하기 쉽지 않겠다고 예측했습니다.
SMB 비엔날레에서 디자이너에게 주어지는 여러 과업의 일정 조율부터 제작까지 과정을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최종 결과물을 완성하기까지 정기적인 디자인 회의를 포함하여 구체적인 작업의 과정을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박연주 저에게 주어진 과업은 비엔날레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것을 시작으로 포스터, 온/오프라인 배너와 광고, 트레일러 등을 포함한 각종 홍보물과 전시장 그래픽디자인, 웹사이트 디자인 그리고 도록까지 비엔날레와 관련된 거의 모든 시각물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제작 과정은 다른 디자인 업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디자인 시안을 만들어서 제안하고, 조율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 완성된 디자인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다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공동 예술 감독 체제이다 보니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초기 회의에 들어갔을 때는 디렉토리얼 콜렉티브의 멤버들 마다 주제에 관하여 각자 생각이 달랐던 것 같고, 저 역시 이 비엔날레의 주제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어요. 전시 자체도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전시 개요를 읽고 설명도 들었지만, 여전히 저에게 모호하게 다가왔죠. 포스터 디자인을 준비하면서, 콜렉티브에게 핵심어를 추려달라 요청했어요. 이 키워드들을 놓고 나름대로 전시 기획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작업을 풀어 나갔습니다.
SMB 많은 사람들이 비엔날레에서 소개되는 내용이 어렵거나, 특수한 영역이라고 여깁니다. 비엔날레 기획자와 디자이너는 대중성과 고유의 정체성 모두를 충족하는 아이덴티티 고민을 할 수밖에 없고, 그런 의미에서 과장되지 않은 타이포그래피를 중심에 둔 디자인 방향은 용감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픽 아이덴티티의 컨셉을 더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박연주 시작은 ‘좋은’과 ‘삶’ 각각의 단어 사이에 괄호를 넣어서 그게 과연 무엇인지 모두가 잘 모르지만 함께 더듬더듬 짚어보자는 식의 접근을 했고요. ‘가능성의 영역’이라는 개념을 잡았습니다. 제가 처음 제안했던 시안은 지금 보시는 최종안과는 조금 다릅니다. 비엔날레 아이덴티티가 가진 어떤 특유의 분위기나 관습을 깨고 싶었고, 펜 글씨와 같이 더 가벼운 글자로 제안했는데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콜렉티브 중 한 분은 구체적으로 괄호는 안된다고 강력하게 주장도 하셨어요. 디렉토리얼 콜렉티브가 구성원끼리 얼마나 터놓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인지, 각자가 어떤 입장인지는 모르지만, 정중하게 진행되는 회의에서 어느 한 명이 강하게 주장하면 다른 사람들은 섣불리 반대 의견을 내기가 쉽지 않죠. 그래픽 아이덴티티에서 제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스펙터클’하지 않은 것, 작은 요소들이 흩어지고, 연결되는 느낌을 살리고 싶다는 거였어요. 10회 비엔날레의 중요한 개념 중에 ‘아고라’가 있었고, 그래서 전시장 공간 디자인에도 ‘아고라’와 같은 중앙의 공간을 중심으로 작은 요소들이 흩어져 나오는 민들레 꽃씨 같은 형태가 반영되었던 것 같아요. 저는 글자를 좀 더 무게감 있는 폰트로 바꾸되, 중심 없는 구성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주제의 핵심어를 한글과 영어 알파벳으로 교차해서, 빈 괄호가 등장하는 포스터 이미지를 다시 제안했어요. 10회 비엔날레 아이덴티티를 『CA』 잡지에 소개하면서 “대답보다는 질문을, 완결보다는 비결을, 중심보다는 주변을, 위계보다는 평등을 강조했다”고 썼습니다. 사실 최종 디자인의 방향성을 제가 의도한 데로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급박한 일정과 디렉토리얼 콜렉티브라는 체제로 인해 생긴 어떤 결정의 공백 상태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마지막까지 누구도 흔쾌히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고 그렇다고 크게 반대하지도 않는 애매한 상태로 디자인이 정해졌어요.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일반적인 비엔날레 아이덴티티로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은 디자인 같아요.
SMB 《좋은 삶》 전시 도록의 디자인 전반에 박연주 디자이너님의 타이포그래피 실험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한글과 영어 서체가 뒤섞이는 배치, 목차 구성이나 콘텐츠 배열의 순서 역시 기존의 문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런 방식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리고 디자인 선택에 관한 이유나 배경이 궁금합니다.
박연주 《좋은 삶》 전시 도록은 기획 자체가 조금 독특했던 것 같습니다. 전시의 결과물 보다는 작가들의 작업 과정 중에서 특정 부분을 선택해 싣는 것으로 기획되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작가마다 텍스트와 시각 자료가 다 달라서, 통일된 무엇으로 엮기보다는 각각의 텍스트와 이미지 성격에 맞게 디자인을 전개해보기로 했어요. 저는 책의 편집이나 타이포그래피를 통해서 정보를 전달하는 것과 정보를 흔들고 균열을 만드는 것 사이에서 작업하는 걸 좋아하니, 흥미로운 작업일 수밖에 없었죠. 일반적인 디자인 작업에서 내용은 고정된 정보 값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만약 디자이너가 고정된 정보 값을 완전히 해체한다면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되겠죠. 그러나 그것을 약간 느리게 전달하거나 혼돈을 줄 수는 있습니다. 저는 문자의 배열을 통해 내용 전달을 지연시키고, 동시에 같은 정보가 다르게 읽힐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또한 2개 국어나 다국어 병기 방식에도 흥미를 느껴서 《좋은 삶》 전시 도록에서도 한글과 영어를 병기하는 여러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SMB 누군가는 비엔날레 출판물의 장점이 예측 불가능성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어떤 구성의 출판물이 나오게 될지 정해진 상태로 진행될 수 없으니까요. 비엔날레 출판물이 다른 출판물과의 다른 차이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박연주 비엔날레는 행사의 목적과 특성상 여러 실험적인 출판물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비엔날레만이 아니라 미술계 전반에서 만들어지는 출판물에서 제가 문제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전문 편집자의 부재, 또는 전문 편집자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미술계의 필자들 중에는 본인의 글을 편집하는 것이 마치 작품을 훼손하는 것처럼 여기는 태도가 있어요. 모호하면서 수사와 비문이 가득한 글을 최종 원고로 받아 들면, 디자이너로서 좋은 책을 만들고 싶은 의지가 사라집니다. 10회 비엔날레에서는 강유미 편집자가 외부에서 초청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시간적으로 매우 긴박하게 진행되었는데, 방대한 자료가 짧은 시간 안에 수합되고 정리되어 저에게 넘겨졌습니다.
SMB 비엔날레가 디자이너에게 요구하는 과업은 비엔날레의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압축된 시각 언어를 생성하고, 다양한 플랫폼의 환경과 성격에 따라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고민하고, 그에 따른 시각물의 베리에이션을 만드는 거죠. 국내에서는 제작 감리까지도 아우르기에, 디자이너 과업의 범위가 굉장히 넓습니다. 비엔날레는 일의 성격이나 분량이 집중적인 시간에 한꺼번에 이루어지기에, 디자인 팀을 나누어 운영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고요. 10회 비엔날레에서는 이런 부분을 어떻게 해결하셨을까요?
박연주 짧은 작업 시간 동안 많은 작업을 해야 하니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저와 함께 일하던 이유정 디자이너가 디자인 베리에이션과 트레일러 영상 제작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비엔날레 디자인의 작업 범위에 따라 미술관에서 여러 팀에 분산시켜 작업을 의뢰하는 것에는 장단점이 있을 것 같아요. 짧은 제작 기간 동안 서로 잘 모르는 여러 팀이 호흡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일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또 새로운 사람들과 협업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겠죠. 개인적으로는 단일 디자인 팀에 예산을 늘려주고 의뢰를 맡은 팀이 다양한 팀과 협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주는 편이 각자의 목표와 책임이 분명해지고 아이덴티티도 효과적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기관의 행정적인 상황이 이런 부분을 맞출 수 있는 방식인진 잘 모르겠습니다.
SMB 디자이너로서 철학이나 태도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9회 비엔날레(2016)의 출판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장문정 디자이너는 비엔날레의 디자이너는 스스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많은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고, 디자인의 결과보다는 협업자와 소통이 가능한 유연한 지식과 배워 나가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다양한 활동을 만들어가면서 디자인의 이상, 객관성, 중립성과 현실 사이에서 어떤 타협이나 조율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박연주 디자이너로서의 철학 이전에 한 개인으로서 저는 세상의 많은 개념, 정의(definition), 구분 등이 인간의 편의상 만들어졌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인식하며 살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세상이 유동하는 점묘화 같아요. 확신을 잘 못하고 판단도 늘 지연시키는 편입니다. 말씀하신 디자인의 이상향 같은 것도 없는 것 같아요. 그보다는 그냥 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디자이너인지를 알려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디자인을 가능하면 용감하게 하려고 합니다. 소통에 관해서는, 더 잘 소통하기 위한 노력만큼이나 함께 일할 적합한 사람을 찾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비롯한 디자이너들이 각자의 고유성을 더 드러내고, 디자인을 의뢰하거나 협업하는 사람들도 디자이너마다의 개별성을 파악하고 일을 의뢰한다면 소통에서 오는 어려움이 훨씬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SMB 10회 비엔날레의 디렉토리얼 콜렉티브 구성은 신선하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젠더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적을 받습니다.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이나 《W쇼》(서울시립미술관, 2018) 등 젠더 중심의 모임이나 전시에 참여하신 바 있고, 한국의 비슷한 세대 디자이너들 가운데 드물게 여성 디자이너로서 위치를 만들고 지켜오셨죠. 처음 활동하던 당시와 현재 상황의 비교, 그동안의 변화나 경험하신 부분이 궁금합니다.
박연주 처음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회사에는 여성 디자이너 선배가 거의 없었어요. 디자인계 주요 행사나 조직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고요. 물론 저보다 먼저 활동을 시작한 여성 디자이너들도 있었지만 그 수는 눈에 띄게 적었죠. 지금은 디자인 현장이나 학교에서 여성의 수가 훨씬 많아진 것 같아요. 그렇지만 권력이 있는 위치, 결정하는 자리에는 여전히 중년 남성들이 많은 것 같고 그들의 활동이 더 눈에 띄게 조명되는 것 같아요. 여성 디자이너의 성취나 성과에 대한 평가와 기록이 깊이 있게 다뤄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젊은 여성 디자이너들의 경우는 아직도 의뢰인과의 미팅 때 ‘설마 당신이 대표?’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일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젊은 여성 디자이너는 미덥지 않다는 의식이 바탕에 있는 거죠. 물론 저도 젊을 때 비슷한 경험을 했고요.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 성장한 사람 중에 잘못된 성 관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아요. 물론 저를 포함해서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문제점을 알아챘을 때의 태도인 것 같습니다.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하려는 의지를 가졌다면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는 것이 가능하겠죠.
SMB 현재 비엔날레에서는 통합 웹사이트 구축이 중요한 과업인데요.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나 모바일 기기에 대처하는 UX, UI 디자인에 대한 고려, 프로그래밍과 개발 언어를 다루는 전문가로 구성된 디자인팀의 존재가 중요합니다. 10회 비엔날레 웹사이트를 제작하면서 함께 했던 팀이나 협업자에 관해서 말씀해주세요.
박연주 미술관에서 웹사이트 개발과 디자인 과업을 분리해서 의뢰했고, 저는 웹사이트 개발을 직접 할 수 없어 홍진훤 작가에게 프로그래밍 부분을 의뢰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디자인의 어느 부분까지 구현이 가능한지 홍진훤 님과 논의하면서 세부적인 부분들을 진행했고, 정말 빠르게 만드셔서 놀랐던 기억이 나요. 통합 웹사이트는 비엔날레 자원 관리와 공유의 측면에서 중요할 것 같은데, 동시에 비엔날레마다 새로운 시각 언어/웹사이트를 보는 재미는 유지하는 방식으로 구현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명칭 자체에 ‘미디어’가 있으니, 웹사이트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다양하고 새로운 미디어와 연결점을 만들고, 그곳에서 실험을 파생하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10회 비엔날레 때에는 생중계되는 행사 영상을 웹사이트 시작 페이지에 연결했고,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해요.
동시대에는 인쇄매체보다는 SNS나 온라인 홍보가 늘어나는 추세이고 저도 인쇄물의 보관이 부담스러워질 때가 있어요. 그런 변화는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고 어느 순간 더 빠르게 바뀔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디지털 매체를 익숙하게 다루는 사람이 아니어서, 디지털 관련 작업은 늘 도움이 필요하고, 협업의 과정이 중요합니다. 이 과정에서는 사람들과 직접 만나 대화하면서 그 사람의 특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서툰 편이지만 함께 하는 고마움도 열심히 표현하려고 합니다.
SMB 셀 수 없이 많은 문화예술 콘텐츠가 쏟아진다 싶을 정도로 범람하는 동시대에서, 비엔날레의 필요성과 지속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타이포잔치는 국내 유일의 타이포그래피와 디자인 비엔날레로 20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최근 불거진 타이포잔치의 존폐 위기는 비엔날레 생태계의 다양성과 지속 가능성에 관하여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계속 작동하는 비엔날레가 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박연주 현재 타이포잔치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예산이 삭감되어 왔고, 제가 예술감독을 할 때도 전시를 열기 전부터 다음 전시는 없다는 이야기들이 떠돌았어요. 타이포잔치와 같은 행사는 워낙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동안 정말 많은 디자이너들의 노력으로 이어져온 행사인데 한순간 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좋은 비엔날레는 지속될 수 있다는 안정감과 믿음이 있으면 좋겠지만, 주로 정량적인 평가로만 이루어지는 정부와 지자체의 결정에 정성적이고 전문적인 접근을 기대하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타이포잔치의 경우는 새로 조직위원회를 꾸리고 자립적으로 비엔날레 지속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데, 서울시립미술관처럼 미술관 조직 내에 전담팀을 만들고, 사전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행사를 아카이빙하는 것도 참고할 만한 좋은 사례인 것 같습니다.
인터뷰 일자: 2024년 6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