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자들

김경호, 홍철기,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팀
홍철기, 〈둥근 규철의 안쪽〉, 2022. 비디오 조각. 지름 120 cm(조각), 3분(프로젝션 맵핑).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사전프로그램(프리비엔날레) 《정거장》.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2022. 사진: 이의록

본 인터뷰는 비엔날레와 협업에 관해 김경호 기술감독/테크니션과 현장의 사진, 영상 기록을 담당하는 홍철기와 나눈 대화이다. 2022년 보고서에 출판된 글에 2024년 관련이미지를 더해 재편집하였다.

김경호는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4와 2016의 테크니션, 제11회와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사전프로그램(프리비엔날레) (2021, 2022)의 기술감독을 맡았다. 주요 전시로 《Magic Bullet Broadcasting Network》(아트 스페이스 풀, 2013)와 《대양감정》(산수문화, 2016)이 있다. 작가는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기술감독/테크니션으로 활동하였고, 2017년 만리아트메이커스를 설립한 이후 현재 다수의 미술 기관 및 프로젝트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https://manriart.com/

홍철기는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6, 제10회, 제11회, 제12회 비엔날레 (2018, 2021, 2023)의 사진과 영상 기록을 맡았으며, 제12회 사전프로그램(프리비엔날레)의 작가로 참여하였다. 2015년 《맹지》(합정지구)를 시작으로, 《언저리》(쇼앤텔, 2020)까지 도시와 도시 주변환경 속 이질적인 존재들을 기록하는 개인 프로젝트를 병행한다. 작가는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미술 행사의 사진 기록 활동을 시작하면서 현재 다수의 관련 기록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연구명 협력자들

분류 인터뷰

에디션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사전프로그램(프리비엔날레)

참여자 김경호, 홍철기,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팀


SMB 안녕하세요, 두 분은 2014년부터 2021년까지 있었던 네 번의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서 각각 기술감독과 사진기록으로 참여하셨습니다. 한 번의 비엔날레가 치러지는데 필요한 여러 전문가 가운데서 두 분의 역할은 특히 중요합니다. 한 분은 작품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는데 필수적인 기술적 재현을, 그리고 다른 한 분은 현장 기록을 담당하는 비엔날레 협력자들이죠. 이 일을 하게 되신 배경에 관하여 먼저 설명 부탁드립니다.

김경호 2006년부터 2년 동안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근무했어요. 그전까지는 사진을 전공했고요. 영화학교에서 필름부터 아날로그 장비, 그러니까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변환된 데이터, 그리고 디지털 데이터에 대한 가공까지 아우르는 프로세싱을 맡아 진행했습니다. 영화제작 과정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는 과도기적인 시기였기에 기존 교육 기관에서 기술적인 부분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기 힘든 상황이었어요. 장비들은 방치되고 있었고 제대로 된 매뉴얼도 없었죠. 그러다 보니 다양한 기자재와 정보가 있는 영화학교에서 기술 조교로 근무하면서부터 이런 부분들을 습득했습니다. 데이터 흐름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최종 작업에서 프레임이 밀리고, 소리가 틀어지는 문제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영상 신호에 대한 체계를 세부적으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어요. 모임을 만들고, 영어로 된 자료들을 번역해서 함께 공부하고… 이런 걸 한 2년 정도 열심히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게 기본 체력을 만든 것 같아요. 2011년부터 주변 작가들이 화면에 줄이 생기거나 깨지고 프레임이 뒤틀리는 문제들을 물어오면서 관련한 컨설팅을 시작했고요. 그러다가 2014년 봄 일민미술관에서 있었던 《토탈리콜》이라는 전시에 테크니션으로 참여하게 되었죠. 곧이어 8회 비엔날레에서 제가 했던 일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들어왔고, 그렇게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SMB 말씀하신 2008년에서 향후 약 5년, 그러니까 2010년대 중반까지 작품과 전시 제작 환경에서 장비와 기술의 변화에 대해 조금 더 말씀해주세요.

김경호 제가 처음 영화학교에 갔을 때만 해도 필름이 대세였죠. 2006년도 즈음 HD 캠코더들이 보급되면서 인디씬에서도 고화질 장비들을 쓰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2010년도 초반까지도 아날로그 기반 장비들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필름 영상을 디지털화한 후 후반작업을 거쳐 다시 필름으로 출력하는 영상 처리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죠. 근본적인 지점에서 후반작업과 상영까지 전 과정을 디지털로 처리하는 요즘에 비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소지가 많았어요. 조금만 실수해도 데이터가 원하는 해상도나 퀄리티를 얻지 못하는 상황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이런 기술적으로 세세한 부분들을 전문적으로 가르쳐주는 교육 기관도 거의 없었구요. 영화학교도 마찬가지 상황이라, 할리우드에서 활동하셨던 영화감독이나 촬영 감독 같은 분들이 마치 지식 보부상처럼 개인적으로 공부한 내용을 인터넷이나 특강을 통해 전달해주시곤 하셨습니다. 체계화된 정보를 학습하기보다는 파편적으로 알아갈 수밖에 없던 상황이랄까요? 기술이 계속 변해가면서 디지털 시대가 본격화되기 전 단계에서 수많은 변종이 있었습니다. 이 당시 만들어진 영상작업들은 그런 수많은 변종의 꼼수로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어쨌든 그런 무수한 시도들이 있던 시절을 거치며 디지털 시대로 넘어갑니다. 많은 미술가들이 테입에서 메모리 형태로 넘어가던 과도기 시절에 테입으로 촬영한 소스를 컴퓨터로 옮기는 단계에서 굉장히 고생하던 상황들이 기억납니다. 당시 전 미술 작가 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일이 필요했고, 외국 뉴스 방송에서 촬영 및 기술 지원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어요.

(좌) 김경호, 〈On the Air, In the Air〉, 2013. 비디오 설치. 가변크기. (우)  김경호, 〈Axis of Evil Empire〉, 2013. 다큐멘터리. 12분 38초. 《Magic Bullet Broadcasting Network》. 아트 스페이스 풀. 2013. 작가 제공



SMB 2013년 아트 스페이스 풀에서 열린 개인전 《Magic Bullet Broadcasting Network》는 서울 주재 이란 케이블뉴스방송국에서 뉴스 제작 기술 디렉터로 일하면서 경험했던 뉴스, 이미지 재현, 뉴미디어 환경에서 벌어지는 ‘상상의 문화’ 등을 주제로 한 전시였어요. 이렇게 작품 활동을 하던 시기에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같은 기관에서 디지털 아카이빙 실무를 진행하는 일도 병행하셨고요. 미술 제도에서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 대비한 전문 인력이나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았던 시기 전문적 지식을 가진 개인으로서 눈에 보이는 구멍을 막는 역할을 자처하신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 전시의 기술 디렉팅을 일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으실까요?

김경호 저는 운이 좋았던 것이 아버지가 사진관을 운영하셨어요. 어릴 때 암실에 따라 들어가서 ‘어떻게 빛이 이미지가 되지?’ 이런 궁금증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었죠. 대학에서 사진영상학과를 전공하며 머릿속에 상상만 하던 것들을 학습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눈앞에 보이는 시각 이미지 데이터 뒤편으로는 무엇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끊임없이 상상하는… 일종의 놀이를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미술 일을 하면서 데이터가 변형되는 과정에서 얼마만큼 ‘온전하게’ 옮겨지는지에 관한 호기심이 있었죠. ‘온전히’라고 했을 때 처음에는 기술적인 차원에서만 생각하다가, 조금씩 경험을 쌓아가면서 점점 의미론적으로 질문하게 되었구요.

처음에는 매우 세부적으로 원하는 표현, 그러니까 재현에 치중하여 노력했었고, 같은 과정을 거치는 일을 수차례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매체나 환경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능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상상하는 걸 구현할 수 있고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까요. 재료가 미디어만으로 이루어진 작품의 경우 작가의 의도는 결국 장비를 통해서 실현된다고 볼 수 있죠. 다르게 말하면 전시 장비는 작품 제작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런데 저처럼 중간 업무를 맡은 사람이 작품의 의도, 흐름, 처리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제대로 보여줄 수 없게 된다는 걸 경험에서 알게 되었어요. 작가의 의도를 읽고, 어떤 부분을 연결해서 오류를 줄여 작품 의미의 훼손을 최소화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고… 모든 현실에는 한계가 있지만, 가능한 범위 안에서 최상을 만들어보자 생각하게 되었죠.

SMB 그런 개인적인 관심과 활동이 처음으로 공식화된 것이 일민 전시였고요?

김경호 그 일은 전시의 공간 조성으로 참여했던 부업들 팀에서 연락이 오면서 시작되었어요. 바로 이어서 8회 비엔날레에 참여하였고, 당연히 비엔날레가 제게 요구하는 부분이 확장되었고요. 큰 규모의 전시에서는 기술적인 전문성만이 아니라 일의 운영도 중요합니다. 저는 워크플로우를 짜는 등 계획 단계에서 업무의 구조를 잡는 작업을 참 좋아하는데요. 비엔날레와 같은 전시는 개별적인 작품보다도 데이터와 전시의 흐름을 함께 봐야 합니다.

SMB 현장에서 발생하는 변수가 많은 비엔날레 전시, 특히 미디어 작품이 집중적으로 소개되는 현장에서 작가님 처럼 특수한 배경과 지식을 가진 전문가의 역할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미디어 장비를 대여하고 설치해주는 일반적인 장비 업체들도 많이 있잖아요. 만리아트메이커스만의 경쟁력을 설명해주시겠어요?

김경호 저는 2014년 말부터 예술인협동조합에서 약 3년 정도 활동을 했고, 지속 가능한 창작 구조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어요. 혼자서 작업하면서 생활을 이어가기 너무 어렵고, 더군다나 자본을 많이 쓰는 작업을 하다 보니 끊임없이 일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현실적인 상황에 관하여 다른 작가들과 협동 구조를 만들어서 함께 생존하는 방식에 관하여 많이 고민했어요. 초기에는 개인사업자 형태로 진행하다가, 협동조합 경험을 하다 보니 단순한 명목으로 묶어진 협동조합 형태로는 예술 영역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죠. 3년 동안 할 수 있는 걸 거의 다 해봤거든요. 작업에 들이는 에너지만큼 많은 에너지를 쏟아가며 공동체 구성과 지속가능한 환경을 고민해봤지만, 결국 쉽지 않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일을 하면서 독일에 ‘에이도텍’이라는 미디어 회사를 알게 되었죠. 그들의 시스템을 직접 보면서 참조하게 되었어요. 저희랑 크게 다르지 않은 형태더라고요. 저희는 사회적 기업이고 현업 작가들이 팀원으로 참여하고 있죠. 그리고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노동 조건과 임금 기준이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현실화시키면서 의미 있는 전시에 참여할 수 있다면 저희에게 경쟁력이 생기는 건 물론이고, 저희가 참여하는 미술 행사들도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독일을 포함한 유럽에서 활동하는 기술팀들은 우리보다 거의 4배 가까이 느리게 일하면서 많은 보수를 받아요. 그리고 핵심 인력 외에는 모두 프리랜서들인데,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작가들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팀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 등 체계도 잡혀있고요. 저희도 작년부터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새로 합류한 팀원들에게 조그마한 공구 세트도 선물했습니다.

SMB 그러니까 만리아트메이커스는 단순한 수익 창출만을 목적에 두기 보다는, 전시와 작품 생산에 수반되는 제대로 된 기술 지원을 위한 팀을 꾸리고, 여기에 현업 작가들이 참여하면서 함께 수입원을 만드는 공동체 역할을 하며, 동시에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따라가기 위한 교육 플랫폼이기도 한 매우 이상적인 구조를 지향한다는 말씀이시죠?

김경호 네, 저도 계속 공부가 필요합니다. 기술 변화는 굉장히 빠르고, 작가들은 이 모두를 직접 알아갈 시간을 확보할 수 없어요. 그리고 어느 정도 수준을 넘어가면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고착되게 됩니다. 그래서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은 거죠. 좋은 작품을 만들고, 잘 유통하고, 그리고 과정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넉넉하지는 않아도 작업할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을 갖춘 생태계 구축에 욕심이 있습니다. 앞서 질문에서 기관의 시스템을 짜는 일을 언급하셨는데요, 현실적으로 기관에서 기술적인 변화에 일일이 대응하는 완벽한 구조를 갖추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다만 핵심을 건드려줄 수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외부의 팀이 연결되어 상호 학습하는 연계성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놀고, 학습하며, 만들고… 사실 미술관이라는 단단한 조직에서 쉽지 않은 부분이지만, 그런 방식 없이는 매번 바뀌는 예술 트렌드나 상황에 적응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요.

SMB 회사 운영에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일까요?

김경호 일의 지속성입니다. 저희들은 실력을 더 고도화시킬 수 있는, 그러니까 할 수 있는 것들을 꽤 많이 준비해놨어요. 그런데 이걸 써먹을 데가 없어요. 독일의 에이도텍이라는 회사는 유럽 전역을 대상으로 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리적으로 한정적이에요. 해외 진출을 상상해본다면 중국이나 동남아시아가 있지만, 중국은 거대자본을 기반으로 기술적 수준이 높고, 동남아시아 역시 서구권 교육을 받은 소수의 엘리트가 끌고 가는 상황입니다. 현재 시장에서는 저희 같은 회사가 수익률을 낮추면서 경쟁력을 유지하는데 한계점이 빨리 올 거라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하는 동료들과 계속 손을 잡고 있을 만한 (재밌는) 일들이 존재해야 하는데, 상업적인 회사들과 경쟁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입니다. 물론 저희 역시도 이윤을 추구하지만, 상업적인 회사들의 마인드는 따라가기 힘들죠. 계산이 정확하고, 빠르고,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쓰지 않죠. 그들의 태도는 저희처럼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쓰는 회사들과 다릅니다. 경쟁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물론 미디어 전시에 특화되고 잘 만들려고 노력하는 회사들도 존재합니다. 어쨌든 가장 중요하면서 어려운 지점은 이 예술공동체를 유지하는 일입니다.

SMB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일을 하시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김경호 저희는 어떤 전시를 맡아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자체적으로 내부 상영회를 하면서 작품과 전시의 사전시각화 과정을 거칩니다. 작업을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하고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며 전체 전시가 어떤 느낌일지 상상하지요. 11회 비엔날레 경우는 이 단계에서 상상했던 바와 실질적인 결과가 꽤 정확하게 맞아떨어졌고 저희가 해 오던 일의 수준이 나아졌다고 느껴졌고요. 11회 비엔날레의 현장 응대와 관련해서 유리 패티슨의 〈선_셋 프로_비전〉이 기억에 남습니다. 작품 매뉴얼도 미리 왔고, 유니티라는 게임 엔진을 통해서 이미지를 구현해 내는 작품의 작동 방식도 분명했지만, 현장에서 LED 패널과 연결하는데 굉장히 애먹었습니다.

미디어 작품은 새로운 장비로 연결하는 등 그 환경이 조금이라도 바뀌었을 때 일어나는 변수가 많고, 모든 경우의 수를 일일이 예측할 수가 없는 어려움이 있지요. 유리의 작품을 구현할 때 정말 고생했는데… 해결점만 바라보면 쉽게 풀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그런 선택은 작품의 원리에 개입하게 되는 거라 원본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패널과 연결하는 방법을 찾느라 어려웠고, 결국엔 해결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미디어를 제어하는 작가 관점에서 세부적인 생각들을 할 수 있었고요. 사실 이건 엄밀히 말해 전시 프로덕션보다 작품 프로덕션으로 업무 범위가 넘어가는 거지만요. 《하루하루 탈출한다》를 떠올려보면, 전반적으로 미디어 자체를 부각하지 않으면서도 적재적소에 필요한 것들이 잘 조화된 전시였다고 생각합니다. 예술 감독의 의도에 부합하기 위해 섬세한 부분들을 많이 신경 쓰면서 준비했고요. 전반적인 예산 상황을 고려하면서 조금이라도 영상의 퀄리티를 높일 방법을 찾고, 공간 상황에 적절한 스피커의 선택과 볼륨 조절을 통한 조화에 신경썼습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준비 단계에서 상영회를 통해 전시의 전체 이미지를 상상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유리 패티슨, 〈선_셋 프로_비전〉, 2020-21. 게임 엔진 소프트웨어 (불칸), 개조한 델 파워에지 R620s, 지포스 TX 1650 GPU, 유라드 대기 모니터 모델 A3, LED 매트릭스 스크린, 조립식 앵글, 케이블. 270 × 192 × 75 cm. 제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하루하루 탈출한다》 . 서울시립미술관. 2021



SMB 홍철기 작가님은 어떻게 비엔날레 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홍철기 제가 인터뷰에 앞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저는 제 위치가 전문가 혹은 예술가 이기보다는 비전문가 혹은 관객의 입장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특히 지금까지 인터뷰하셨던 다른 분들과 비교하면요.

SMB 세대도 다르고요.

홍철기 네. 그리고 저는 제도권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일을 시작했고요. 오로지 흥미에 의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렇게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계속 흥미로운 것들을 찾다보니 결국 이 자리에 있게 되었는데요. 그래서 제가 이야기하는 방식, 관점, 판단, 태도나 기준 등이 미술 제도권 사람들과는 조금 다를 것 같고요. 그리고 한편으론 그게 제 매력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죠. (웃음) 그런 전형적이지 않음을 유지하려고 노력을 하는데, 이런 부분들이 어쩌면 미술 비엔날레라는 제도를 전문가로서 이야기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어쨌든 이런 저의 입장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이 일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2008년입니다. 서울디자인올림픽에 초청된 슈카르트(ŠKART)라는 세르비아 작가 콜렉티브가 한국에 왔었죠. 저는 어떤 행사고 어떤 작가인지도 모른 채 그들의 현지 코디네이터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아르바이트처럼 소개받은 일이었고, 그땐 뭐든 처음 보고 겪는 게 공부가 되던 시절이어서 마다할 이유가 없었어요. 그들의 한국 활동을 따라다니며 했던 여러 일 중에 사진기록도 있었고요.

SMB 슈카르트는 어떤 활동을 하는 팀인가요?

홍철기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저도 너무 오랜만에 떠올려보는 이름이라 좀 가물가물 하지만, 사회적 논쟁거리나 주요한 이야기들을 공적인 장소에서 퍼포머티브한 형식으로 풀어내는데요. 예를 들면 공동 자수 작업이나 합창단처럼 임시적인 공동체를 구성하지요.

SMB 그들의 공동제작 과정을 기록하면서 사진을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홍철기 그렇죠. 그게 기회가 되어서 이런저런 전시를 촬영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저로서는 전시 촬영이 일이기보다 일종의 학습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제도 교육을 받지 않은 입장에서 작가들과 이야기하고 어울리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한데, 저는 방구석에 앉아 뭐를 읽거나 누군가의 강의를 듣는 방식이 맞지 않아서… 일단은 전시를 본다는 행위 자체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시를 기록하는 행위는 전시를 한 번 더 보는 것과 같았죠. 그렇게 여러 선배 작가들의 전시를 촬영하다가 제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사진기록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게 2013년이었나요?

SMB 2012년부터 2014년까지죠.

홍철기 네. 그때 처음으로 큰 규모의 미술 행사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어떤 계기가 되어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 능력보다는 주변의 관계자분들이 좋게 봐주신 덕분에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제4회 APAP가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SMB 구체적으로 어떤 변곡점일까요?

홍철기 처음으로 전시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보고 참여했던 경험이었죠. 더군다나 APAP는 규모가 컸고, 안양예술재단이라는 기관 혹은 제도권이 주도한 행사라는 점에서 이전의 경험과 달랐습니다. 사진기록에서 대상은 여러 가지인데, APAP는 트리엔날레면서 공공미술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이 정말 많았고… 그 많은 프로그램을 세부적으로 기록하다 보니 사진 촬영의 모든 장르를 전부 답습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죠. 전시, 프로그램, 외부와 내부에서의 활동사진, 스튜디오 촬영 등 거기에는 모든 경우의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디어 작품들도 상당수 있었고요.

SMB 네, 비물질적인 예술에 부합하는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 작품들을 공유재로 전환하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홍철기 맞아요. 자연스럽게 거기서 여러 작품과 프로젝트를 접하고 기록했던 경험이 이후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참여로 이어진 것 같아요. 저에게는 중요한 변곡점이었습니다.

SMB 비전문가라고 말씀하시지만 2015년 첫 개인전 이후로 작품 활동도 병행하시잖아요? 작품을 위한 촬영과 사진기록을 위한 촬영을 비교해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홍철기 제가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은 지점은 일종의 공간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제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관점, 태도, 거창하게 말하면 세계관도 포함되겠죠. 첫 번째 개인전은 소소한 주위의 풍경들을 다루었고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없던 풍경’인데, 사실 실재하지만, 일반적인 관심 밖에 존재하는, 소외된 풍경입니다.

SMB 가시적이지 않은 존재들을 사진을 찍어서 드러낸다고 말할 수 있나요?

홍철기 그렇죠. 근데 그 가시적이라는 단어도 한계가 있어요. 사실은 가시적인 공간이니까요. 다만 가시권에 없다고 해야 하나… 여하튼 제 작업이 향하는 바가 그렇다면, 전시공간은 반대의 성격이라고 볼 수 있죠. 완벽하게 가시적이고 보여주기 위한 목적성이 뚜렷한 공간입니다. 그 ‘가시성’이라는 측면만 놓고 보면요. 그런데 그 지점이 결국 사진이라는 매체가 원천적으로 가지는 질문과 맞물립니다. 뭐 모든 시각 매체가 포함되는 얘길 수 있지만, 어쨌든 구상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사진’에 가까운 거죠. 전시라는 형태, 형식, 그리고 제도에 관한 것들은 관념의 대상이 아니거든요. 매우 절대적인 대상이고, 그래서 제게는 미술품, 미술행위, 전시공간과 미술관을 찍는 것이 저의 개인적 관심사와 정반대에 있기에 생기는 또 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촬영하면서 어떤 판단을 만들어 가는데, 이를테면 저 모퉁이가 프레임 안에 들어갈지 아닐지 이런 고민의 순간들이 주는 즐거움이죠. 그러니까 이 일은 제게 단순한 수입원이기 전에 더 큰 즐거움입니다.

(좌) 홍철기, 〈공중〉, 2017. 작가 제공. (우) 홍철기, 〈언저리〉, 2020. 작가 제공



SMB 말씀하신 것처럼 사진을 찍는 행위에는 대상을 정하고, 프레임을 결정하고, 사용처에 맞는 보정작업 등 다양한 선택의 과정을 동반합니다. 그리고 앞서 APAP의 예를 들어주셨지만, 대상은 물론이고 사진을 찍는 상황에도 여러 가지가 있고요. 전시에는 영상 작품도 있고, 조각, 회화, 설치, 그리고 수반되는 프로그램도 다양합니다. 움직임이 단순한 토크나 강연부터 움직임이 동적인 퍼포먼스나 야외 워크숍도 있고, 모든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프로덕션 등… 이런 일련의 과정이나 상황에서 매 순간 판단이 필요한데요. 여기에 어떤 기준이 있다면 이야기해주세요.

홍철기 전시와 프로그램 기록이 개인 작업과 다른 부분은 객관성인 것 같습니다. 누가 봐도 전시의 특징이나 시각적인 구성이 잘 드러날 수 있는 프레이밍이 중요합니다. 사각의 사진 프레임에 들어가는 정보 간의 관계를 판단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디까지 객관적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객관성을 다르게 얘기하면 일종의 ‘정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증명사진을 찍어본 경험이 있잖아요. 모든 것들에는 정면이 있고, 전시기록의 경우에는 일종의 사회적인 정면이 뭔지를 판단하고 찾아가는 지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도 프레임을 결정하는 것이 어렵게 다가옵니다. 그런 고민이 깊어지다가… 지난 개인전은 공간을 360도로 찍어서 그대로 보여주자는 시도까지 해본 건데요. (웃음) 아무튼 프레이밍은 너무 어렵습니다.

SMB 프레임에 무엇을 담느냐가 곧 사진의 발언으로도 여겨지니 그렇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어쨌든 사진에서는 사회적이고 객관적인 ‘정면’을 알고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시죠?

홍철기 네. 저한테는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전시의 증명사진 같은 거니까. 프레임 안에 정보들이 간결하고 조화롭게 보여질 수 있길 원합니다.

SMB 홍철기 작가 사진에는 정보를 과장하거나 왜곡하지 않으려는 거리 설정과 예민한 톤의 조정이 있습니다. 제작 과정에서 여러 선택지를 두고 과장이나 ‘오버’하는 선택을 안 한다는 미덕이랄까요.

홍철기 그렇긴 한데… 드라마를 만들어내기엔 아직 기술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선택을 못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웃음) 그리고 최종적으로 후보정이 결정짓는 무언가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대한 눈으로 보는 상태와 유사한 이미지로 편집하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떤 면에 있어서는 보정작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전시기록 사진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태도가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수직과 수평이 맞지 않는 서울시립미술관이라는 공간을 사진으로 찍고 포토샵을 통해 인위적으로 맞춰 완벽한 것처럼 보여주는 결과물이 실제가 아니라는 식의 태도나 관점이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달라졌어요. 어쩌면 아마도 우리가 직면한, 아니 제가 직면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 속에서는 후보정된 이미지가 실제를 초월하는 이미지로 여겨지는 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아직 이 변화를 어떤 식으로 소화할지 좀 고민이 되지만요. 부정만 하는 태도에서 지금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고자 합니다. 여하튼 이런 변화를 경험하고 직면하는 나의 태도 등을 제시해주는 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 작업이나 전시에 대한 네비게이팅을 해주었고, 앞으로도 계속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SMB 두 분 모두 201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관련한 일을 시작하시면서 비엔날레 외에도 서울을 중심으로 생겨난 여러 종류의 전시를 두루 보고 경험하셨을 텐데요.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특징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요?

김경호 가장 큰 변별점은 어떤 근본적인 합의, 적어도 제가 경험한 경우에 한해서는 동시대 미디어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정의를 넘어서려고 한다면 더 맞는 표현이겠네요. 사실 기술에 대한 한계는 일종의 ‘돌도끼’처럼 바꿔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엔날레는 일반적인 전시와 다르게,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정치적인 행위일 수 있고. 사회적인 의미나 영향력을 만들기 위해 화려함을 선택하는 상황들이 있는 거 같아요. 그런데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그런 지점에 대해 좀 단호한 태도를 보여 왔습니다. 일반적인 속성에 쉽게 포섭당하지 않으려는 노력이요. 최신의 기술을 사용하고 말고의 문제를 떠나서, 비록 오래된 기술을 쓰거나 혹은 그와 상관없이 문제의식을 느끼고 과거와 미래를 들여다본다는 점…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다른 비엔날레를 둘러보면 한눈에 굉장히 강렬하지만, 이 비엔날레는 오히려 그런 전형성을 해체해온 여정 같아요.

SMB 여전히 미디어아트라고 하면 기술적인 외양을 우선에 둔 형식부터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비엔날레의 정체성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동시에 긴 역사적 흐름을 상기해보면 기술과 예술은 계속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지금의 형태까지 진행되어왔고요. 오늘날의 미디어아트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김경호 소위 미디어아트가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은 ‘플레이스테이션’과 같은 경험을 어떻게 뛰어넘을지와 같은 거라고 봅니다. 사용자의 자유도가 높고 시각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범위도 넓은 게임과 같은 플랫폼과 예술은 같은 방식으로 경쟁할 수 없습니다. 요즘 많은 작품이 게임 형식으로 구현됩니다. 미디어의 화려한 측면에만 집중하면, 그것의 방법적인 구현에 중독될 수밖에 없습니다. 작품의 의미가 형식의 기저에 깔려있더라도, 기술적 한계 자체를 훌쩍 뛰어넘는 놀라움을 구현한다 하더라도, 결국 예술은 그 의미를 찾는 지점이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미디어아트는 새로운 미디어가 사회에서 어떤 의미나 방향을 제시하는지 보여주는 거지, 여기에서 기술이 가져오는 효과는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비엔날레는 바로 그런 눈으로 전시를 만들어 왔고요. 덧붙여, 앞으로 미디어아트에서 가장 조망되는 기술은 AI 알고리즘과 소셜 네트워크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의미들 사이를 뒤흔들며 지금의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죠. 미디어아트는 그것이 돌멩이든, 나무든, 컴퓨터든, VR이든 상관없이 기술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조망하거나 기록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SMB 미래의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려요.

김경호 지금의 방향성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른 곳들이 아무리 화려한 것들로 이목을 끌어도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예술적인 실험과 의미를 확장하는 노력을 계속했으면 좋겠습니다. 약간 위험이 따르더라도 한 걸음 더 앞에 가려는 시도들이 있었고, 그런 태도를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기존의 자료에 잘 접근할 수 있는 경로가 있다면, 그동안 만들어 온 의미가 더 풍부하게 전달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좀 더 쉽게 지난 전시에 대한 자료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경로요. 전시가 끝나면 모두 닫아버리지 않고, 새로운 행사에서도 앞에 있었던 전시나 작품에 대해 함께 얘기 나눌 수 있겠죠.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의 창작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느꼈던 건데요.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힘들 수 있겠지만, 작품 프로덕션을 진행할 때 작가들에게 예산만 주는 게 아니라 국내에 있는 사람들, 특히 미술학과 학생들이 참여해서 창작의 경험을 할 수 있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순히 비싼 작업을 수입했다는 차원을 넘어서 국내에 있는 작가나 학생들과 협업의 기회를 만들죠. 이와 같은 경험은 전시보다도 큰 파급력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홍철기 저는 무엇보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관객으로서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게 비엔날레는 어려워서 재미를 주는 측면이 있습니다. 전시를 촬영한다는 행위가 곧 미술을 공부한다는 점과 비슷한데요. 전시를 보고 촬영하는 건 결국 이 전시를 어떻게 판단하는지와 연결되기 때문에 공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엔날레는 현대미술의 최전선에서 미디어를 다루는 전시다 보니, 전시장에 쓰여 있는 문구나 도슨트 선생님들의 설명 등으로 어렴풋이 아는 정도가 최선일 때도 있습니다. 판단 자체가 힘들 만큼 어려운 전시도 있어요. 현대미술은 고전이 아니라서 계속 공부하고 관심을 두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사람들이 어렵다고 불평하는 부분도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지점이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변별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경험했던 비엔날레는 관객과의 소통이나 상호작용을 상당히 중요시했던 것 같아요. 특히 9회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 같은 경우에는 어려운 현대미술에 접근하게 하는 여러 장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계몽적인 방식은 아니었던 것 같고요.

SMB 관객이 궁금하고 의지가 있다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경험할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하게 제시되었다는 거죠?

홍철기 네, 그렇죠. 그런 통로들이 조금 더 견고해지고, 확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김경호 작가님이 얘기한 것처럼, 아카이빙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수집만을 의미하지 않고요. 수집, 분류, 그리고 목록과 쓰임까지를 아우르는 과정이요. 기록은 결국 미래를 위한 일이고, 앞으로의 쓰임을 고민하며 진행되는 기록은 결국 더 나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그리고 더 나은 미술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에 관계되는 일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아카이빙이 조금 더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전담팀이 만들어지는 것이 곧 내용의 견고함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거죠.

SMB 네, 이번 프리비엔날레의 가장 중요한 목적도 그런 부분이죠.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정체성을 자체적으로 연구하고, 업데이트하면서 동시에 참여의 방법과 형태를 더 세밀하고 전문적으로 가져가려고 합니다.

홍철기 그리고 또 다른 점은 작가들과의 소통이나 지속적인 관계 구축입니다. 그게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죠. 비엔날레는 일종의 상아탑 같은 거잖아요. 그렇지만 동시에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역할에는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대비시키는 것도 가지니까요.

SMB 그런 역할을 병행해오긴 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장기적인 비전으로 단계별 구성이 필요합니다.

홍철기 네, 그렇죠. 발굴에만 그치지 말고, 작가와의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 연계성을 더 돈독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저의 지난 개인전 《언저리》에서 시도한 작품은 만리아트메이커스 도움 없이 구현되지 못했을 텐데요. 개인전 기금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기술적 어려움이 있었는데, 만리아트메이커스라는 공동체의 존재와 지향점들 덕분에 전 협력적인 관계를 통해 작품을 구현할 수 있었어요. 이런 지점들은 우리 사회 전체는 아니지만 적어도 미술인들끼리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고 생각해요. 계속해서 실험하고 시도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SMB 그러니까 자발적인 네트워킹이 연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촉매이자 생산의 장이 되는 비엔날레요?

홍철기 네, 결국은 그런 연결성이 고여 있지 않고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한편으로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생각하는 거고요.

김경호 저도 덧붙이자면, 학습과 놀이가 선순환하는 형태가 결국 변화의 동력이 될 거라고 생각됩니다. 기억 활동도 마찬가지이고요. 지속 가능한 행동들을 통해 근간이 되는 부분을 잘 키워나가지 않으면, 결국 생기를 잃게 됩니다. 저는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그런 경우들을 많이 봤거든요. 학습과 놀이 사이에서 균형점을 얼마나 잘 잡느냐가 결국 좋은 성과를 가지느냐와 연결됩니다.

SMB 오랜 시간 일로 만나와서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 몰랐던 점들을 발견할 수 있어서 반가운 자리였습니다. 두 분 모두 고맙습니다.

인터뷰 일자: 2022년 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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