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슨팅: 매개 혹은 봉사

박귀주, 이성우,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팀
케망 와 레훌레레, 〈우주의 또 다른 막간 궤도〉, 2016. 칠판에 분필. 590 × 1,070 cm.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6 커미션. 작가 및 스티븐슨 갤러리 제공. 사진: 김익현, 홍철기

본 인터뷰는 현장에서 관객들과 직접 소통하는 서울시립미술관 도슨트 2인과 비엔날레에 관해 나눈 대화이다. 구술 녹취를 편집한 글과 관련 이미지 자료들, 인터뷰이의 약력을 수록하고 있다.

박귀주는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공부한 뒤 파리로 이주하여 대학에서 프랑스 문화사 과정을 수료하는 등 5년을 체류하였다. 귀국 후 2004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시립미술관 도슨트로 활동 중이다.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2006년에는 준학예사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2013년부터는 서울시립미술관 도슨트 양성교육 강사로, 2019년에는 서울여성플라자, 제주도립미술관 소양 교육 강사로 참여하였으며, 2022년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발전회의에도 참여하였다.

이성우는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후 1985년부터 국내 한 회사에서 근무,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중국에서, 이후 4년간 미국에서 생활하였다. 귀국 후 대학에서 8년간 마케팅 관련 강의를 하였으며, 해외미술관에서 경험했던 전시안내 프로그램에 관한 기억을 바탕으로 2010년부터 2017년까지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도슨트로 활동하고, 2011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시립미술관 도슨트로 활동 중이다.



연구명 도슨팅: 매개 혹은 봉사

분류 인터뷰

에디션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사전프로그램(프리비엔날레)

참여자 박귀주, 이성우,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팀


본 인터뷰는 최근 10여년 간 개최된 비엔날레에 초점을 맞춰, 변화한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새로운 역할을 만든 전문가들의 경험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비엔날레는 어렵다’는 일반적인 불평 가운데 도슨트는 현장에서 관객들과 직접 소통하는 매개자(mediator)이자 메신저(messenger)가 됩니다. 서울시립미술관 도슨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동시대 미술에서 이야기하는 ‘참여’라는 개념과 실천에 관하여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SMB 전시해설사를 일반적으로 매개자(mediator) 혹은 전시 투어 가이드(tour guide)라고 부릅니다만, 국내에서는 도슨트(docent)라는 호칭을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언제 그리고 어떻게 도슨트 활동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도슨트로 일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나 자격 요건이 있을까요?

박귀주 우연히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외국어로 진행가능한 도슨트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어요. 프랑스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마치 통역사를 선발하듯 온갖 외국어 진행 도슨트를 모집하길래, 현대미술에 대 관심과 더불어 프랑스에서 귀국한지 얼마 안된 시기라 외국어 도슨팅에서 언어 능력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 지원했어요. 실제로 뽑히고 나서는 프랑스 교수진에게 딱 한번 설명을 한 이후로 다른 기회는 없었고요.

서울시립미술관 도슨트는 2004년 도슨트 양성 교육을 받고 그해 12월 말부터 시작했어요. 당시 처음으로 참여했던 미술관 전시가 미디어_시티 서울 2004 《디지털 호모 루덴스》 였습니다. 당시의 비엔날레는 도슨트 한 명이 전체를 맡아서 설명하지 않고, 각 층마다 도슨트를 배치하고, 각 층의 담당 도슨트가 다음 층 담당 도슨트에게 관람객을 차례로 인계하는 방식으로 운영했어요. 한번은 2층 담당 도슨트가 지각을 해서 미술관에 소동이 났던 기억이 있네요.

이성우 저는 2006년부터 4년정도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있는 회사에서 근무하며 생활했던 적이 있어요. 주말이면 드 영 미술관(de Young Museum)이나 SF MoMA(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 가서 현대미술 작품 감상하기를 즐겼고요. 가끔 취미로 그림을 그립니다. 제 아내도 미술대학을 졸업했고요. 해외에서 미술관에 가면 멋지게 차려 입은 할머니들이 전시를 해설하는데, 이해하기 쉬운 영어로 잘 설명해주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좋은 봉사 활동이라고 생각되었어요. 그렇게 가끔 도슨트 투어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귀국하자마자 백남준아트센터에 갔다가 도슨트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였고요. 덜컥 신청을 하고, 그때부터 도슨트로 활동하게 되었어요. 백남준아트센터는 주로 설치나 영상 작품을 소개하였고, 평소 회화에 관심이 있던 저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도 도슨트를 모집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신청하고 미술관 도슨트 활동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도슨트 양성교육을 통해 현대미술을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고요, 도슨트가 되기 위한 시험도 보았어요.

박귀주 당시에는 수강신청을 먼저 받아 8-10회 정도 강의가 먼저 이루어지고, 이후에 도슨트 시험 응모 신청을 따로 받았어요. 1차 필기시험과 2차 면접 및 발표(시연) 시험 차례였습니다. 요즘은 경쟁이 심해지고, 절차도 바뀌어서 1차 필기시험이 더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옛날에 요즘 같은 시험 수준이면, 저희도 붙기 어려울 거라고들 말해요.

(좌)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도슨트 장면, 서울시립미술관, 2023. 박귀주 제공 (우) 《시공時空 시나리오》 도슨트 장면, 서울시립미술관, 2024. 이성우 제공



SMB 미술관 도슨트로 활동하시면서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를 몇 번 경험하셨을까요? 가장 기억에 남는 비엔날레가 있는지, 있다면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성우 저는 7, 8, 9회 그리고 12회 비엔날레 도슨트 경험이 있어요. 제가 처음으로 미술관 도슨트를 한 게 2011년입니다. 그 다음 해에 미디어 시티 서울 2012 《너에게 주문을 건다》가 개최되었어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3~4년정도 도슨트 활동을 쉬었고, 12회 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2023) 부터 다시 도슨트로 참여하였습니다.

박귀주 저는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사전프로그램(프리비엔날레) 《정거장》(2022)까지 포함해서 총 11번의 비엔날레를 경험한 것 같아요. 11회 《하루하루 탈출한다》(2021)는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일정이 바뀌면서, 현장 투어는 한번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교육은 모두 받았고요.

비엔날레가 매번 개성이 강하기 때문에 전부 제 기억에 남아있어요. 그럼에도 몇 가지 말씀드리면 3회 《디지털 호모 루덴스》(2004)에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작가가 파트너 울라이와 서로의 뺨을 때리는 퍼포먼스 영상 〈빛/어둠〉(1977)을 소개했는데, 이 작품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장면들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아요. 최근에는 12회 《이것 역시 지도》(2023)에서 최찬숙 작가의 〈THE TUMBLE〉(2023) 영상이 굉장히 아름다워서 인상에 강하게 남았어요. 이주에 관해 사유하는 아름다운 글이 자막으로 삽입되었고, 영상 자체의 울림도 깊게 전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같은 층에 있었던 프랑소와 노체 작가의 〈코어 덤프〉(2018-2019)라는 작품은 영상 4편이 모두 굉장히 흥미진진했어요. 제가 영상을 그렇게 많이 보는 편이 아닌데, 정말 재밌게 봤어요. 작품이 전자폐기물을 둘러싼 불균형적인 관계를 굉장히 심도깊게 다뤘다고 생각하고요. 특히, 〈코어 덤프: 다카르〉편에서는 시인이면서 세네갈의 초대 대통령인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의 연설이 나왔는데, 짧지만 희귀한 자료라 인상 깊었습니다. 그리고 남서울미술관에서 열린 12회 프리비엔날레 《정거장》(2022)은 지난 비엔날레 정체성과 역사를 훑는 의미 있는 전시였다고 생각합니다. 초기 비엔날레 작품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예를 들면, 홍순철 작가의 〈도시폭포〉(1996/2022)는 젊은 관람객들도 아이디어가 기발하다는 반응을 보였었고, 이규철 작가의 사진 조각도 볼 때 마다 감탄을 했어요. 전 연령층에서 관심을 보였던 전시였어요. 건물 바깥의 미디어보드에서 〈도시폭포〉 스틸 이미지를 보여주었는데, 광화문이나 도심 전광판이 아닌,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설치되어 관람객들의 주목을 상대적으로 덜 받은 점이 아쉬웠어요.

한 가지 더 얘기하자면, 7회 《너에게 주문을 건다》(2012) 3층 전시장에서 도슨트 설명을 할 때마다 고장이 나 있어서, 거의 모든 도슨트 선생님들이 설명을 하지 않는 작품이 있었어요. 어느 날은 저도 평소처럼 설명을 안하고 지나치고 있는데, 현장에 작가가 와 있었던 거예요. 정색을 하며 저에게 다가와서 왜 본인 작품을 설명하지 않느냐고 물으시는데, 너무 당황스럽고 난처했어요. 도슨트 까페에 작가님이 정말 섭섭해했다며 그날 상황을 공유했더니, 다른 도슨트 선생님도 작가님이 현장 모니터링을 하는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고 말하시더라고요. 당시 한국에 상주하시던 분이라 비엔날레 초기에는 거의 매일 전시장에 오셨던 것 같아요.

이성우 저는 8회 《귀신, 간첩, 할머니》(2014)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개별 작품 보다도 전반적으로 평소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던 것을 처음으로 예술로 살펴볼 수 있었던 기회였어요. 백남준 작가도 시도한 바 있지만, 박찬경 예술감독의 작품과 비엔날레를 보면서, 제가 알고 있는 얄팍한 예술의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이었어요. 저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직접 경험해본 적 없는 샤머니즘, 미신, 무당, 굿 이런 문화를 터부시하는 경향만 알고 있다가, 그런 문화에 관한 예술적 해석을 끄집어 내는 걸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당시에는 관객들 중에도 상당히 의아해하고 놀라워하는 반응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8회 비엔날레에는 사진, 영상 등 종교적인 것들, 특히 기독교에서는 터부시하던 내용들이 굉장히 많이 포함되어 있었어요.

SMB 도슨트는 전시 설치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관계자 외 분들 중에서 가장 처음 전시장을 둘러보며 관객을 맞을 준비를 하는 분들입니다. 신작이 많고, 바쁘게 진행되는 행사라 사전에 제공받은 내용과 현장에서 확인하는 작품에 차이가 생기는 등 관련해서 여러 경험이 있으실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박귀주 비엔날레는 아무래도 외국작가가 많이 참여하니까 해설 준비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미술관에서 기본적인 자료를 제공해주시지만, 도슨트 스크립트는 각자 공부하고 준비해서 마련합니다. 공개가 안된 영상 작품(신작)이 많은 경우, 비엔날레 기간 초기에 투입되는 도슨트는 모든 작품을 한꺼번에 보면서 제한된 시간 안에 작품을 보고, 이해를 하고, 스크립트를 쓰는 준비를 해야 하니 어렵죠. 하지만 도슨트 선생님들은 비엔날레를 행사나 축제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요. 평소에 만날 수 없는 작가들이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귀하고 중요한 기회이니 비엔날레에는 대체로 참여하려고들 하세요. 저는 주로 초기 해설에 지원하는 편이예요. 현장에서 설치가 완성되기 전에 전시장을 기웃거리기도 합니다만, 설치 마무리 단계에서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9회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2016) 해설을 준비하면서 현장에서 케망 와 레훌레레(Kemang Wa Lehulere) 작가님을 만난 적이 있어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작가인데, 로비에 분필로 그린 거대한 벽화 작품 〈우주의 또 다른 막간 궤도〉(2016)를 소개했죠. 이 작품 역시 신작이라 사전 자료나 교육에서 이미지에 관한 설명을 구체적으로 들을 수 없었거든요. 설치 중인 현장에 작가가 있길래 손가락이 그려진 부분이 어떤 의미인지 물어봤더니, 어떤 특정 날짜를 답해줘서 찾아봤던 기억이 나요. 작가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역사에서 항쟁이나 시위와 관련된 날짜, 자신의 가족과 관련된 날짜를 영어 수어로 그렸다고 길게 설명을 하는데, 제가 반응이 없고, 잘 못 알아듣는 것 같으니까 한쪽에서 바쁘게 일하는 코디네이터가 통역을 해주기도 했어요. 그런데 집에 와서 구글을 통해 그 날짜들을 검색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을 더 해보니, 구글에서는 아마도 정치적 입장에 따라 검색이 안되는 날짜가 있겠다고 추측을 할 수 있었죠. 소웨토 항쟁(Soweto uprising)이나 학생 시위와 관련된 날짜 1-2개 정도는 찾을 수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글이 없었어요. 논문까지는 찾아보지 못했고요. 다만 그 중에 하나라고 짐작만 하였습니다.

이성우 비엔날레 초반에는 도슨트 경력이 좀 더 오래되신 선생님들이 전시 해설을 주로 하세요. 신작 등 작품 관련 자료가 비교적 미비하기 때문에, 처음 경험하는 작품에 바로 맞닥뜨려서 해설해야 하면 당황스럽거든요. 도슨팅을 위해서는 모든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 하지만, 모두 챙겨서 볼 시간이 없는 경우도 생깁니다. 개막하고 약 일주일 후에 해설을 하거나, 한정된 공간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리는 경우가 생기면, 전시 해설 투어를 운영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어요.

SMB 미술관에서는 통상 비엔날레 개막전에 전시 해설을 위한 도슨트 교육과 자료 제공이 이루어 지는데요. 이 자리에서 벌써 작가와 작품에 대한 공부를 끝내시고, 질문을 던지거나 추가 설명을 해주시는 도슨트 선생님도 있습니다.

박귀주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전시에 해설자로 참여하게 되면, 먼저 미술관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공부해야 합니다. 자료 제공이 늦어지면 작가 이름이라도 미리 알아두고, 전시의 대표작가가 누구인지 기사를 찾아보기도 하고, 전시 주제하고 관련된 것을 신문기사로 먼저 살펴보는 등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서 전시기획자가 참여하는 온라인 교육을 받죠. 보통 개막 2-3일 전에 현장 투어가 있는데요, 어느 정도 공부가 된 상태여야 이 현장 투어도 따라가기 수월해요.

이성우 현실적으로 현장 투어를 통해서 모든 정보를 습득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미리 준비하는 겁니다.

박귀주 현장에서 작품을 실제로 보면, 작품 크기가 생각한 거보다 너무 크거나 혹은 작거나 한 경우도 있어요. 자료를 통해 준비하면서 스크립트에 포함시켰던 작품을 막상 현장에서 확인하면서 오히려 그 옆의 작품을 설명하는 게 훨씬 나은 경우도 생기고요. 동선의 문제도 있고요. 해설할 작품을 선정하기 위해 현장 확인은 필수입니다. 공부 자체는 집에서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작품의 작동 방식을 포함하여 구체적인 사항은 현장에서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성우 흔하지 않지만, 전시 소개에는 포함되어 있던 작품이, 현장 설치에서는 아예 빠지는 경우도 있어요. 한 작가의 작품 3개가 소개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막상 현장에 가보면 2개만 있던지…

SMB 해설을 위한 동선이나 작품 선정은 각자 정하시나요? 아니면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가이드가 있나요?

박귀주 대부분의 도슨트 선생님들은 교육에서 기획자가 중요하다고 말한 부분을 참고해서 작품을 선정합니다. 동선의 경우, 특별히 지시된 경우가 아니면 개인별로 다른 동선을 고를 수 있어요. 보통은 전시 초반에 해설하는 선생님들을 참고로 합니다. 그분들의 동선이 특별히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따라가요. 그런데 사람마다 말하는 속도와 성향이 달라서, 말하는 내용과 양에 차이가 있어요. 저는 중간에서 약간 느린 정도의 속도인 것 같아요. 그래서 할 말을 간추려서 하는 편이예요. 작품 선정은 공부해보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작품이 공통적으로 나오게 됩니다. 요즘은 좀 달라졌을 수도 있어요.

이성우 덧붙이자면, 한 개인으로서 도저히 마음에 와닿지 않거나 어떻게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작품이 있을 수 있어요. 저는 그런 작품은 해설에 포함하지 않고 넘어가는 편이예요. 뭔가를 외워서 이야기하기 보다는 제가 보고 느낀 것을 이야기해야 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각자의 선호에 따라 해설하는 작품은 달라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비엔날레의 경우 동선은 나름의 옵션을 만들어 놔요. 특정 공간에 사람이 너무 몰려 있으면, 현장에서 과감하게 제외하고요. 영상 작품도 막상 작품 앞에 도착하니 끝나버렸다면, 다른 작품을 먼저 보고 다시 가기도 하고, 그렇게 옵션을 마련하면서 동선을 짜요. 처음에는 어려웠는데,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겼어요. 관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른 작품을 보도록 제안하는 거죠. 한편으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작품도 제 나름의 판단에서 설명할 거리가 있으면 해설을 하는 편입니다. 12회 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2023)에서 소개한 차학경 작가, 뉴욕에서 작고한 그 분의 작품 〈입에서 입으로〉(1975)가 그랬어요. 영문학을 공부하는 제 딸이 저에게 어떤 책을 사달라고 부탁을 해서 비엔날레 전에 먼저 알게 된 작가입니다. 그런데 비엔날레 전시장에서 차학경 작가 작품이 크기도 작고 별도 설명문도 없어서 관심을 주지 않고 지나치는 관객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차학경 작가의 작품을 해설에 포함시켰죠.

(좌) 차학경, 〈입에서 입으로〉, 1975. 단채널 비디오(흑백, 사운드). 8분.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서울시립미술관, 2023. 사진: 글림워커스 (우) 김수남, 〈한국의 굿: 만신들 1978-1997〉, 1978-1997 (뒤) 김인회, 〈평안도 진적굿 기록〉, 1986 (앞).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4 《귀신 간첩 할머니》. 서울시립미술관, 2014



SMB 비엔날레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국내외 교류의 허브 역할을 하는 국제전인데요. 해외에서는 쉽게 이해되거나 정서적 공감을 가질 수 있는 작품들이, 국내에 오면 너무 낯설어 질 수밖에 없는 부분도 생깁니다. 비슷한 이유로 전시해설에 포함시키지 않은 작품에 어떤 예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이성우 작년 12회 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의 경우 토크와세 다이슨 작가의 작품이 그런 경우인 것 같아요. 전시장 입구에 있었던 거대한 설치 작품 〈나는 그 거리에 소속된다 3,(힘의 곱셈)〉(2023)이요. 교육에서 설명도 듣고, 이해해보려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아 난감했어요. 그런 류의 작품이 어려워요. 예전에 어떤 작가 인터뷰를 읽는데, 기자가 작품이 어렵다고 말하니 제 작품을 3일 동안 보시면 작품이 말을 해줄 거라는 답변을 읽고 너무 화가 났던 기억이 있어요. 아니, 현실적으로 누가 작품을 3일 동안 볼 수 있나요? 저도 작품을 오랫동안 보려고 해요. 그리고 생각을 하려고 하고… 그렇지만, 유난히 불친절한 작가들이 있어요. 작가가 잘 설명하지 않는 작품은 정보가 없으니까 파악하기도 어렵죠. 제 나름대로 뭔가를 떠올리게 되면 기분은 좋지만요. 그런데 사람이 저마다 선호도나 중요도가 다르니까, 어떤 사람이 좋아하는 작품을 저는 이해못할 수도 있어요. 일률적이지 않죠. 나름의 해석을 할 수 있는 것이 현대미술을 즐기는 맛이라고 생각 합니다. 모든 것이 다 아름답고 의미있게만 여겨지지 않는… 그런 맥락에서 제 말을 이해해주시면 좋겠어요.

박귀주 저의 경우에는 어렵다고 해설을 건너뛰지는 않고요.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제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부분만이라도 설명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7회 비엔날레의 아크람 자타리 작가의 〈내일이면 다 괜찮아질거야〉(2010)라는 작품은 내용보다도 제목이 시적이고 전달되는 분위기를 좋아했던 기억이 있어요. 작품에서 녹색 광선에 관한 얘기가 나오거든요. ‘녹색 광선’이란 옛날 영화도 있고, 개인적인 취향이 결합되어서 작품이 굉장히 서정적으로 다가왔어요.

이성우 도슨트를 하면 좋은 점은 작품을 오래, 여러 번 볼 수 있는 거예요. 아무리 좋은 작품도 한 두 번 보기 어려운데, 도슨트를 하면 자주 보게 되니까요.

SMB 말씀하신 것처럼 비엔날레 전시 해설의 내용은 현장에서의 상황, 이를테면 사운드의 유무, 감상 소요 시간, 특수 요소 등 사용되는 매체나 설치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을 텐데요. 각기 다른 성격의 작품들을 골고루 아우르면서, 다른 관람자들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특별히 고려하시는 부분이 있을까요?

박귀주 저는 스크립트 준비에 신경을 쓰는 편인데요. 설명할 작품에 대해서만 원고를 작성하면 불안해요. 그래서 쓸 때, 설명을 안 할 작품 원고도 예비로 3-4 개를 준비해요. 현장에서 작품이 고장나는 등의 이슈가 생기면 필요할 수 있으니까요. 또 내용을 줄이거나 늘리거나 약간의 융통성이 필요합니다. 길이가 긴 영상 작품의 경우 현장에서 제가 설명하고 싶은 부분이 재생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그 장면이 나올 때까지 한없이 기다릴 수 없고, 조정이 필요하죠. 그리고 다른 관람객을 방해하면 안 되어서, 해당 작품 앞에 한 사람의 관객이라도 있다면 반드시 양해를 구합니다. 제스처나 말로 설명합니다. 양해를 구하지 않으면, 해당 작품을 감상하던 관객이 바로 곁에서 진행되는 해설에 불쾌해하고 떠나는 경우가 있어요. 그분에게 이런 경험은 전체 비엔날레에 관한 불편한 경험과 나쁜 인상으로 남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이성우 저도 비슷한 경우에 “작품 해설을 하려고 하는데, 같이 들으셔도 된다”고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박귀주 아무리 큰 전시라도 해설이 50분을 넘기면 관람객은 힘들어합니다. 서소문본관 전층에서 하는 비엔날레도 50분 안에서 끝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최근 들어서, 미술관에서 큰 기획전이 많이 열렸는데, 도슨트 선생님마다 시간 편차가 있었어요. 어떤 투어는 30분, 어떤 투어는 50분, 이렇게 달라졌는데. 관람객들은 오래 들을 수록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미술관 운영자 입장에서는 짧게 끝낼 수 있는 전시를 굳이 길게 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고, 평균 시간을 조절하자는 제안이 있었어요. 1개 층에서만 개최되는 전시면 30분, 2개 층을 쓰는 전시면 40분, 전 층을 쓰면 50분. 이런 제안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 공간 크기를 기준으로 설정한 시간이 모든 전시에 꼭 들어맞진 않는 것 같아요. 경우에 따라 1개 층만 쓰는 전시일지라도 관람객에게 최소한의 내용을 전달하는데 해설 시간이 50분이 필요할 수도 있거든요. 어쨌건 많은 분량을 제한된 시간에 맞춰서 전달하기 위해서는 말의 속도도 빨라지는데, 그러면 해설 자체의 완성도가 어색해지는 부분이 있어요. 이런 지점들이 도슨트에게 숙제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관객분들이 해설 중에 갑자기 개입하거나, 해설의 흐름을 끊는 경우도 꽤 있었어요. 미술관에 자주 오시는 남성 관람객이었는데, 갑자기 해설 중간에 손을 번쩍 들며 “질문이 있습니다.”라고 하더니, “서울시립미술관에는 도슨트가 몇명인가요?”라며 해설과 상관없는 질문을 했던 경우도 있어요.

이성우 저의 경우는 제가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편이에요. 해설 시작하기 5분전쯤 현장에 가서 해설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어느 정도 전시와 작품을 이해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전시 한번 둘러보셨어요? 미술관에 자주 오세요?” 이런 식의 질문을 해요.

SMB 도슨트는 비엔날레 생산자보다 더 자주 관객들과 대면하고 현장에서의 피드백을 즉각적으로 마주할 텐데요. 특히,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무료 입장이라 다른 어떤 비엔날레보다도 다양한 층위의 관객들이 방문하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전시 해설 프로그램에도 미술전문가, 미술애호가, 일반관람객 등 비엔날레와 현대미술에 관한 지식과 경험도에 차이가 있는 다양한 분들이 참여하실 테고요. 해설 준비나 진행에 특별한 기준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성우 도슨트 해설에 참여하는 관객의 경우 현대미술을 깊게 이해하는 계층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비엔날레는 보통 젊은 관객층이 많이 찾는다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을 마주하기도 하고요.

박귀주 비엔날레는 고정 관람객이 있는 것 같아요. 비엔날레를 놓치지 않기 위해 챙겨서 오시는 분들이 있어요. 초기 비엔날레에서는 첨단 기술 위주의 작품들이 중심에 있었다면, 근래에는 매체도 확장되었고… 하지만 연령층이 더 넓어졌기보다는, 일정한 비엔날레 관람객층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이성우 전시 해설에 10명이 모인다고 가정하면, 약 60-70% 정도의 수준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장 해설이 오디오 가이드나 모바일 앱과 다른 점은 눈을 마주치고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점이예요. 해설의 내용도 참여자 수준에 따라 조금 조절을 할 수도 있고. 그런 것들이 도슨트 몫이고, 또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 경험에서 미술전문가는 전시 해설 투어를 듣지 않죠. 듣는다 해도 티를 내시지 않아요. 대부분의 참여자는 미술애호가 일부와 일반 관람객입니다. 대게 해설 초반에 들어보고 판단하세요. 들을만하면 계속 듣고, 아니면 중간에 빠져나갑니다. 해설을 듣는 사람들이 전시에 대한 사전 지식을 많이 가지고 계시진 않겠죠.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보다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해설 외적인 부분에 관심을 보이시는 분들이 따로 질문을 하시면, 제가 알고 있는 부분에 한하여 답변들 드리는 편입니다. 저는 현장에 일찍 오는 편이고, 미술관에서는 영어 해설 투어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지 않아서, 외국인들이 보이면 경우에 따라 일부러 다가가서 내용을 소개하려고 하죠. 자연스러운 상황에서는 그렇게 해요.

SMB 작년에 있었던 관람객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비엔날레를 챙겨 보는 전문 관객과 소수의 일반 관객이 있고, 대다수는 미술관의 관람객이 비엔날레 관객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미술관이 호황일 때 비엔날레 관객도 많아지는 등 서로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한국의 미술 향유층이 그렇듯이, 비엔날레의 관객 또한 늘 20-30대 여성이 중심이 되어 왔는데, 다양한 연령과 문화적 배경의 관람층을 끌어들이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이성우 제가 팬데믹 동안에 쉬고, 3-4년만에 다시 도슨트 활동을 하게 되면서 이전과는 조금 달라진 관람객층을 느낄 수 있었어요. 옛날에는 아침에 부부동반으로 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최근에는 그런 부분이 눈에 띄고, 제 또래이거나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 함께 미술관에 오시는 경우도 생겨났고요. 아마도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은퇴하는 나이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미술관을 방문하는 횟수가 조금 늘어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을 미술관이 인지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흡수할 수 있으면, 관객층이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귀주 이성우 선생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도슨트 선생님들도 부부가 서로의 해설을 듣고 함께 미술관을 오는 경우가 생겨났어요. 이전에는 그런 경우가 없었거든요. 요즘은 도슨트 선생님 가족이 다같이 미술관으로 나들이해서 전시해설을 들으시고, 모니터링도 해주시는 경우가 늘어났어요.

이성우 서울시립미술관 근처에 식당도 많고, 고궁도 있고 해서 가족 단위의 관객이 함께 즐기기에 적절한 곳 같아요.

SMB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전시장 환경이 급변하였고, 전시해설 프로그램도 다양화되었습니다. 모바일을 활용한 도슨트 앱, QR코드, 별도 기기를 통한 전시 해설 서비스도 많이 활용됩니다. 그룹으로 이동하는 전통적인 전시 해설 대신 개별적으로 이어폰을 끼고 해설을 들으며 조용히 관람하는 방식이 각광받기도 했는데요. 이처럼 달라진 전시 현장에 어떻게 대응하시나요?

박귀주 단체 관람을 위한 해설에서는 앱을 이용해 해설을 제공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이어폰을 장시간 사용하면 귀도 피곤하고, 앱에 사용되는 어휘가 문어체에 가까워서 딱딱합니다. 그런 면에서 여전히 대면 전시해설이 필요한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현장에서는 투어 시간이 맞지 않아 할 수 없이 앱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미술관 운영상 도슨트 투어 횟수를 늘리기 어렵다고 하는데, 이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습니다.

이성우 영어 도슨트는 앱을 권장해드리고 싶어요. 한국어-영어 두 언어 모두 유창하게 해설할 수 있는 사람을 도슨트로 구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박귀주 예전에는 영어 도슨트가 있기도 했었죠. 외국인을 선발해서, 함께 교육을 듣고 일년 정도 활동했습니다.

이성우 도슨트 투어의 가장 큰 장점은, 관람객들과 직접 소통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현장에서 질문도 받고, 융통성 있고, 쉽게 해설하는 도슨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도슨트는 작품에 대해 공부하고, 잘 모르면 설명을 하지 않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앱은 유명한 배우가 목소리 녹음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어쨌든 본인의 말이 아니라 큐레이터나 작가가 써준 말을 그대로 읽게 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이 많다고 생각해요.

박귀주 기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 등에서 소개되면서 각광을 받는 것 같지만, 사실 현장에서 보면 도슨트가 직접 운영하는 해설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관람객이 훨씬 많아요. 이 분들이 온라인에서는 조용하니까, 특히 연세가 있는 분들은 SNS나 블로그를 활발히 하시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점점 그분들의 의견이나 반응이 소외되기도 해요. 도슨트 앱 외에도, 전시 안내와 개별 작품 설명을 담은 가이드북 인쇄본을 무료로 배포한 것이 좋았습니다. 현장에서 반응도 좋았고요. 해외의 미술관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찾아보면 생각보다 다양한 외국어 서비스를 발견하는데요. 이걸로 외국어 공부를 해도 되겠다고 생각할 정도로요. 정말로 친절하게 그리고 실감나게 잘되어 있어서 부러웠어요. 그 나라에 직접가지 않아도 경험할 수 있잖아요.

SMB 말씀하신 것처럼, 여전히 사람과 사람이 직접 대면하고 진행되는 도슨트 투어만의 특수성과 장점을 대체할 방법이 없습니다. 관람객 만족도 조사에서도 도슨트 투어가 관객들에게 소통과 이해도 면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고요. 도슨트 선생님 간에 서로의 해설에 관한 평가나 피드백을 주고받는지 궁금합니다.

박귀주 해설 준비는 보통 각자 개별적으로 합니다. 일단 해설 프로그램 운영이 시작된 이후에 현장의 반응과 경험을 통해 부족하거나 수정할 부분을 보중하죠. 대체로 초기의 일주일 정도 다른 도슨트의 해설을 많이 들으면서 수정을 하는 것 같아요. 본인이 공부를 안 한 부분, 놓친 부분을 그렇게 서로 공유하고요. 요즘에는 준비한 스크립트를 미술관의 교육 프로그램 담당 학예사에게 제출하도록 되어 있어요. 시작일 5일전, 전시 초반에 해설을 시작하는 선생님들은 개막하고 3일내로 원고를 제출하는게 원칙입니다. 담당 학예사가 원고를 읽어보고 피드백을 주세요.

이성우 제가 처음 도슨트 활동을 시작할 때는 제 아내를 세워놓고 시연을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요즘은 미술관에서 관련 자료를 잘 준비해주시기 때문에 자료집만 보면 준비하는데 문제없어요.

(좌)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6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 프로그램 참여시 작성한 메모, 2016. 박귀주 제공 (우)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라운드테이블: 과거의 퓨처리즘. 진행: 소피아 듀론 SMB12 협력 큐레이터, 참여 작가: 놀란 오스왈드 데니스, 아구스티나 우드게이트, 최윤, 최찬숙, 파이어룰 달마, 프랑소아 노체, 히메나 가리도-레카. SeMA휴, 2023. 사진: 글림워커스



SMB 최근 들어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 접근성이 주요한 이슈입니다. 수어 해설이나 쉬운 글 해설처럼 여러 시도들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고요. 관련해서 두 분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박귀주 캡션은 글자 크기가 작으면 사실 관객들이 보기 힘들어 해요. 위치도 눈높이에 맞춰서 조절이 필요한 것 같아요. 쉬운 글 해설은 사실 이게 진짜 쉬운 글인가? 라는 생각이 드는 것들도 있었어요. 한편으론, 도슨트 선생님들끼리 농담으로, 이렇게 다 설명해버리면 우리 해설은 무슨 의미가 있냐고 걱정을 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쉬운 말 해설이건 무엇이건 전부 붙여두어도 관람객들이 모든 것을 다 읽지는 않아요. 선별적으로 볼 수는 있어도 그렇게 열성적으로 보는 관람객은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기본적인 부분, 조명이나 글자 크기 등을 조정해서 눈에 쉽게 들어오도록 하는 장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성우 저는 조심스럽게 제 의견을 말해보고 싶어요. 접근성 관련해서 일의 순서를 따져 본다면, 해설 이전에 일단 전시 공간이 좀 넓어야 장애인들도 편하게 볼 수 있어요. 공간은 그대로인데, 큰 글씨의 캡션, 쉬운 말 해설, 수어 해설 영상에, 배리어 프리 장치까지 설치하면, 그 자체는 분명히 의미 있고 좋은 일이지만, 실질적인 접근을 해결하는지에 관하여 현실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단은 공간이 넓어야 접근하기 편할 것이고, 그 전에는 기본적인 교통 문제에서 해결점들이 풀려야 하고요. 미술관만 앞서 나간다 해서 큰 효과가 있을지에 관한 의문이 듭니다.

박귀주 며칠 전에 서소문본관 1층 전시장에서 해설을 하는데, 관람객이 많이 모여 있었어요. 그 사이에 휠체어를 타신 분이 해설을 들으러 오셨고요. 제가 조금 걱정이 되어서 그 분에게 해설 속도가 빠를지도 모르는데 어떨지 여쭤보니 괜찮다고 하셨어요. 이런 상황에 많이 익숙하신 분 같았어요. 그룹에서 앞자리를 차지하시고, 미리 이동을 하시더라고요. 해설을 진행하다가 보니 옆에 있는 분과 자리 때문에 싸우시더라고요. 이 선생님 이야기처럼, 관람을 위해서는 기본적인 인프라 문제가 우선인 것 같아요. 그런데 보여주기 식으로 무조건적인 접근성을 강조하는 게 조금 아쉽습니다. 해외는 기본적인 것이 갖춰진 상태에서 추가적인 내용들인데, 우리 문화는 그런 부분들을 고려하면 바뀌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SMB 그동안 비엔날레 도슨트 경험을 바탕으로 도슨트 프로그램 운영에서 일정, 대상 관람객, 예약 방식 등 제안하고 싶은 점을 말씀주세요.

박귀주 관객분들에게 해설 프로그램 횟수를 늘일 수 없는지 문의를 많이 받아요.

이성우 예전 비엔날레에서는 하루 두 번씩 했는데, 2023년엔 한 번씩 진행했어요. 횟수가 줄어든 배경에는 예산 등 내부 요인들이 영향을 주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도슨트는 봉사가 목적이거든요. 지난번 어떤 전시에서는 도슨트에게 전시 도록을 증정했어요. 그러니까 도슨트 비용 지급을 전시 초대권이나 기념품 등으로 대체하는 등 도슨트 입장에서는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방법이 여러가지 있다고 생각해요.

박귀주 몇 년 사이 도슨트에 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난 것 같아요. 일종의 공급과잉이라고 하죠. 전시에 참여하는 도슨트가 많아지고 전반적인 운영 횟수도 줄어들면서, 개인별 참여율이 줄었어요. 최근 전시에서 제가 총 3번을 설명했어요. 일단은 참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준비한 시간에 비해 참여 횟수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슨트 선생님들 사이에서 참여 전시 숫자를 각 1회씩 줄이고, 한 전시에 한 도슨트의 참여율을 높이자는 제안도 있었는데요. 저는 전시 설명 횟수가 늘어나면 복잡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자료 준비는 더 필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잘 해주세요. 다만 영상 작품의 경우에는 미리 볼 수 있도록 고려해주시면 좋겠다 싶어요. 작품 자체가 어려우면, 아무리 자료를 많이 주셔도 어려우니까요. 이해한 만큼 설명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은 관람객층을 세분화해서 도슨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에 관한 논의가 있는데, 괜찮은 방향인 것 같아요. 어린이, 시니어, 단체 관람객 등 속도와 동선이 달라져야 하는 대상이 있습니다. 현장 해설 전에 강의실에 먼저 모여서 전반적인 설명을 들은 다음에 전시장에서 대표적인 몇 작품을 관람하는 방식도 효과적일 거라 생각합니다.

이성우 백남준아트센터에는 어린이 도슨트 프로그램이 있었는데요. 어린이들은 언어가 다르잖아요. 강의실에서 영상 등을 미리 보고, 전시장으로 이동해서 작품을 관람하면 작품에 대한 이해가 더 빠를 것 같아요. 그리고 또 다른 제안 사항은, 비엔날레에서 일반 대중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도 소개되면 좋겠습니다. 물론 기획자의 몫이지만, 백남준처럼 친숙한 작가도 있어야, 어렵고 낯선 비엔날레라는 인상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젊은 관람객들 중에 미술관에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진 않지만, 현실이니까 인정은 해야죠. 셀카도 많이 찍고, 작품 사진도 많이 찍고, 하지만 미술 작품 자체에 대한 고민은 별로 안 하는 것 같아요. 어쨌건 그렇게 사진을 찍으러 오는 관객을 위한 작품, 포토제닉한 작품이나 포토존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학생 단체 관람 사전 예약을 추진하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선생님들 중에 비엔날레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도 있을테고, 지난 비엔날레에서 고등학생 단체가 왔었는데 좋아하더라고요. 단체관람 예약을 받고, 시간대를 맞춰 도슨트 프로그램을 운영해도 의미 있고 좋을 것 같아요.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정도의 규모에서는 가능할 것 같아요. 그리고 평소에는 오전 10-11시, 주말 오후 2시 정도 관람객이 적은 시간대에 맞춰 도슨트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관람객이 많이 몰리는 시간대를 피해서 자유 관람을 방해하지도 않고, 운영 차원에서 더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SMB 비엔날레는 일반 관객의 ‘어렵다’는 반응을 살피면서도, 동시에 고유의 정체성, 전문성과 실험성을 지켜야 합니다. 도슨트 프로그램 외에 관객 친화적인 이벤트나 프로그램을 제안해 주신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박귀주 현대미술에 관심있는 관객이라면 참여작가가 가장 궁금할 것 같아요. 되도록이면 작가가 직접 관객과 만나는 참여 프로그램이 좋을 것 같아요. 여건이 된다면, 작가가 직접 작품을 설명해주는 것도 좋고, 온라인으로 만남도 있을 수 있을 것 같고요. 제가 블로그를 둘러보니, 비엔날레 자체에 애정을 가진 일반 관람객들이 있더라고요. 이분들이 비엔날레와 관련해서 쓴 글, 후기, 사진 같은 자료들을 모아서 볼 수 있는 코너가 마련되어 전시와 연결되어도 좋을 것 같아요.

이성우 마케팅 측면에서 관객을 구별해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현대미술에 어느 정도 지식과 경험이 있는 관객과, 현대미술에 관심이 없던 분들로 대상 층위를 나누어서 접근할 수 있죠. 예를 들면, 유명한 사람이 전시를 보러 오면 그걸 따라오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런 분들은 마케팅 차원에서 새로운 관객을 개발하는 의미로 시도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반면 현대미술에 관심있는 관객에게는 작가와의 대화, 교육이나 관련 행사를 개최하고, 전시 자료를 충분히 제공하여 정보에 대한 부분을 충족시키는 것이죠. 두 가지를 구분해서 파악하고 접근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언론에 계속해서 노출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바이럴 마케팅이든 행사에 유명인사를 초청하든, 예산과 관련되어 있지만… 또 방법은 여러가지이죠. 저는 어떤 현실적 제약이 있는지 내부 사정은 전혀 모르는 입장에서 얘기해봅니다.

그리고 내용적인 측면에서 길이가 긴 영상은 구체적인 상영 시간을 꼭 안내했으면 좋겠습니다. 비엔날레 장소 선정의 경우, 너무 많은 장소에 흩어지기 보다는 장소 특정적인 작품으로 외부 장소가 연결되어야지 설득력이 있을 것 같고요. 비엔날레는 공간 자체가 전시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공간이 쾌적해야 하는데, 서소문본관이 사실 쾌적한 전시를 만들기에는 너무 협소해요. 그런 공간에 대한 개념을 더 많이 고민해 주셨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SMB 타비엔날레와 차별화되는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만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이성우 서울이라는 배경이 중요한 것 같아요. 서울이 사실 대한민국 전체를 아우르는 전체를 상징하기도 하잖아요.

박귀주 저는 사실 다른 지역의 비엔날레를 일부러 찾아가 보진 않았어요.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가 오래되었는데, 그 정체성을 더 확고하게 다져야 할 시기인 것 같아요. 위에서 언급된 문제들에 주목하고, 예전 비엔날레처럼 도시 서울의 공간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하철 역사나 서울시에서 내세우는 장소 등 그런 곳을 좀더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홍보를 하면서 더 많이 관심 받을 수 있겠죠. 전시때마다 느끼는 건데, 저희가 볼 때 훌륭한 전시인데, 언론의 주목을 못 받는 경우가 있어 보여요. 그런 부분들도 한번 더 살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성우 기자들에게 제공되는 자료의 경우 글 자체도 중요하지만, 몇 가지 지점을 짚어주는 강약 조절이 필요하다는 말을 덧붙여 봅니다.

SMB 전통적인 도슨트의 역할도 점점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달만을 목적에 둔 강의나 설명이 아닌, 관객과의 의견 교환, 대화, 토론을 활성화하는 ‘중재자’에 가까운 것 같아요. 관객 입장에서는 도슨트 투어를 통해 전시나 작품과 소통하고, 도슨트 입장에서는 절대적인 사실의 제공보다는 전시와 작품 경험에 창구를 열어주며 ‘참여의 현장’을 형성하는 당사자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도슨트로서 지향점을 말씀해주세요.

박귀주 도슨트는 전시기획자가 아니기 때문에, 전시의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기본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 역할을 어떻게 조금 더 친화적으로 하느냐가 문제인 것 같고요. 저는 설명을 되도록이면 쉽고 간략하게 하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대신 요점이 빠지지 않게 조심하는 편입니다. 내용을 많이 전달한다고 해서 기획의 의도가 정확하게 전달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설명하면서, 설명하는 사람의 감정이 실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특히 나이가 어린 관람객에게 선입견을 줄 수도 있어서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관람객 스스로 느낄 수 있게, 여지를 남겨두는 설명이 필요한 것 같고요… 되도록이면 객관적으로 전달하고 나머지는 관람객의 몫으로 남겨둡니다. 그런데 선생님들마다 성격도 다르고, 취향도 달라서 느낄 수 있게, 정답에 가깝게 던져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도슨트가 정답을 던져주는 것보다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관람객 반응에 너무 신경을 쓰거나 끌려가지 않고, 중심을 잡고 리드를 하며, 수위 조절에도 신경을 씁니다.

이성우 동의합니다. 해설의 시작을 전시 주제와 전시 기획자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해설의 마무리는 작품과 함께 끝내는데, 이 작품 선정이 사실 고민스러운 부분입니다. 작년 비엔날레의 경우 최찬숙 작가님의 〈THE TUMBLE〉(2023)을 마지막으로 설명하며 끝냈어요. 작품 전반에 흐르는 이주의 이야기가 끝맺음에 좋더라고요. 동선상 적절한 맺음을 위한 작품 선정이 어려운 경우가 있어요. 해설 중간에는 전시 전반의 주제에서 약간 벗어나더라도, 처음과 끝은 그렇게 정해서 전시 전반의 목적과 주제를 상기시키는 것이 관객에게도 필요하고, 제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박귀주 저는 처음에 도슨트 활동을 봉사로 접근하진 않았고요. 처음 도슨트로 참여하면서, 분위기가 친화적이고, 함께 투어 하며, 밥도 먹고 재미있었습니다. 다른 모임과 달리, 공부도 하고요. 돈도 못 버는데 거길 왜 가냐는 주변의 물음에 “그냥”이라고 답했는데, 다른 도슨트 선생님들도 그냥 좋아서 하시는 것 같아요.

이성우 저는 전시와 작품 해설이 인문학적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역사, 사회, 정치, 경제가 현대미술에 모두 포함되기 때문에, 작품을 통해 그런 인문학적 이야기를 나누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작품 해설을 통해 현대미술이 재밌다고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저를 소개할 때 자원봉사자라고 했다가 어느 순간에 그게 어색하게 들리긴 합니다. 이 일은 공부나 연륜도 필요하고, 삶의 연장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귀주 본인이 내적으로 만족을 먼저 얻으니, 엄밀하게 따지면 완전한 봉사가 아닐 수도 있어요.

이성우 그게 가장 바람직한 고차원의 봉사가 아닐까요?

인터뷰 일자: 2024년 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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