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술

원광연,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팀
미디어_시티 서울 2000 《도시: 0과 1사이》 개막식 전경, 2000

본 인터뷰는 원광연 자문위원과 예술과 기술, 비엔날레의 역사에 관해 나눈 대화이다. 2022년 보고서에 출판된 글에 2024년 관련이미지를 더해 재편집하였다.

원광연은 미디어_시티 서울 2000, 2004, 2006의 조직 구성 과정에 있는 여러 위원회에 참여하며 급변하는 기술 문화로 야기된 인간의 환경 변화에 초점을 맞춘 초기 비엔날레의 구성에 전문적인 의견을 개진하였다. 2005년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을 설립 후 초대원장을 지냈고, 현재까지 과학과 문화를 넘나드는 광범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2010년 캐나다 밴쿠버의 국제디지털미디어아트학회에서 아웃스탠딩 리더십 어워드를 수상했으며, 과학과 예술을 결합한 전시 《과학+예술_10년 후》(2003)와 전자음악, 영상, 로봇을 결합한 디지털 퍼포먼스 《신타지아》(2007)를 기획한 바 있다.



연구명 문화기술

분류 인터뷰

에디션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사전프로그램(프리비엔날레)

참여자 원광연,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팀


SMB 안녕하세요. 오늘 이렇게 시간 내어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2023년 12회 개최를 앞두고 있어요. 비엔날레가 있기 전이었던 1996년부터 도시에서 변화하는 미디어에 주목했던 도시와 영상이 세 번 개최되었습니다. 이 전시를 비엔날레의 원형으로 파악한다면, 사실상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역사는 약 25년이나 됩니다. 올해는 관성적인 흐름 속에서 또 다른 행사를 개최하기 보다는, 지난 기록을 정리하고 향후 나아갈 길을 모색해보자는 계획으로 이런 인터뷰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비엔날레의 기획자문위원(2000년), 조직위원과 자문위원(2004년), 그리고 기획자문위원(2006년)으로 참여하셨습니다. 기술, 산업, 그리고 예술이 실질적으로 교류하며 미래 풍경을 그리고자 했던 비엔날레 원년의 취지를 상기해보면, 교수님과 같은 과학자의 참여와 기여가 더욱 궁금해집니다.

원광연 사실 20년도 넘은 오래전 일이어서 기억이 바로 나지는 않더라고요. 인터뷰 요청 연락을 받고 보관 중인 자료들을 꺼내 봤습니다. 의외로 보관하는 문서들이 꽤 있더라구요. 아마 공식적인 자료들은 가지고 계실 테지만. 지금 보여드리는 이것이 최초의 미디어_시티 서울 사업계획서입니다. 제가 가진 것은 최종본은 아니고 초안으로 생각되요. 이 계획서가 나온 시점이 1999년이죠. 제 기억에는 밀레니엄을 바로 앞두고 사회적 분위기가 고조된 상태였고, 낙관론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아요.

우선 서울시 상황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새로운 세기의 시작이라는 시대적인 맥락 안에서 당시 강홍빈 부시장(1999~2002 서울시 행정1부시장, 2009~2016 서울역사박물관장)께서 굉장히 열정적이었어요. 그분이 원래 건축하는 분이셔서 상암동의 디지털미디어시티(DMC) 건립에도 굉장한 열정을 기울이셨습니다. 단순히 신도시만 건설할 것이 아니라, 예술, 문화, 산업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자는 비전이 있었죠.

두 번째는 당시 ‘10대 도시’라고 부르던 서울에 걸맞은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경제와 산업만이 아니라 문화예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죠. 그래서 우리(기획자문위원단)는 문화예술과 첨단 기술 산업이 융복합된 전례 없는 형태면서 지속해서 이어질 수 있는 행사의 본질을 잡는 것에 고심했습니다. 사실 그 누구에게도 답은 없었죠. 다만 그때 나왔던 얘기는 ‘이 행사는 산업 엑스포가 아니다. 그리고 여러 세계적인 도시에 있는 아트 비엔날레도 아니다.’ 그럼 산업전시도 아니고 아트 비엔날레도 아닌 뭔가를 추구해보자고 했던 것이 전반적인 합의점이었습니다.

미디어_시티 서울 2000 《도시: 0과 1사이》 시각 아이덴티티, 2000. 디자인: 안상수. 작가 제공

SMB 산업 엑스포도 아니고 아트 비엔날레도 아닌 것을 논의했었다는 사실이 지금 시점에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혹시 참조하셨던 사례가 있을까요?

원광연 그때 우리 기획자문위원회에서 몇 사람 열정적으로 고민하면서 해외 사례를 조사하기도 했지만, 결론은 우리가 상상했던 새 밀레니엄에 걸맞은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미디어_시티 서울이라는 이름은 안상수 교수님이 제안하셨어요. 이름이 말해주듯이, 이 축제는 예술, 매스컴, 미디어, 산업 등 그 어느 분야에만 종속되지 않는 모호한 성격을 가집니다. 그때부터 제목이 함의하는 철학을 기반으로 행사의 구조와 성격을 디자인해나갔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SMB 네.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날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가 가지는 독특한 위치와 성격은 그 이름 덕이 큰 것 같습니다. 당시 기획자문위원으로 참여하셨던 김홍희 선생님도 ‘트라이앵글 워크숍’을 인상 깊게 기억하시더라고요. 결과보고서에도 산업, 기술, 예술 세 꼭짓점을 잇는 워크숍에 대하여 짧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관련해서 자세한 내용이 궁금합니다.

원광연 제가 마침 그 발표 자료를 찾았습니다. 저는 이 ‘트라이앵글 워크숍’이 굉장히 의미 있었다고 생각하고요. 결과적으로 본 행사, 그러니까 미디어_시티 서울은 미디어아트에 집중해서 그 행보를 지속했지만, 개인적으로 이 행사의 원래 개념과 철학을 살리는 구조가 바로 이 ‘트라이앵글’이라고 봤고, 그만큼 큰 흥미를 느끼고 많은 열정을 쏟았었습니다. 이것이 워크숍에서 마지막 발표 자료일 겁니다. 2000년 2월이었습니다. 당시 전시의 주제어이자 제목을 《도시: 0과 1 사이》로 정했는데, 이 아이디어는 제가 낸 것입니다. 과학자로서 전 미래에 관한 상상을 한마디로 축약하는 단어가 있다면 ‘무한대’라고 생각했어요. 그것을 문화행사명에 걸맞게 ‘0과 1 사이’라는 상징으로 이야기 한 거죠. 0과 1은 디지털을 상징하는 숫자이지만, 0과 1 사이에는 무한히 많은 숫자가 존재하니까요.

그리고 앞으로 펼쳐지는 미래에 디지털이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교육, 비즈니스, 경제, 산업 등 다른 분야에 끼칠 영향에 관한 논의들이 있었고, 이런 생각들을 전시로 보여주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특히 디지털 기술이 일상생활, 예술,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를 들여다보자는데 생각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예술계, 과학계, 산업계를 아우르는 여러 분야의 참여자들은 각각 다른 동기와 출발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워크숍과 전시를 통해서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지요. 삼각형의 각 꼭짓점에는 예술, 과학, 산업이 있어서 이것을 묶는 의미에서 ‘트라이앵글’이 중요했습니다. 워크숍은 25개의 공동 작업팀이 참여해서 약 10회 정도 프로그램을 계획했었는데, 결국 4회까지만 개최하고 멈췄습니다. 불행히도 하나의 좋은 꿈으로만 남게 되었죠.

미디어_시티 서울의 가장 큰 차별점은 일반적이고 전통적인 미디어아트와 달리 미디어아트의 기능성과 산업화를 고려했습니다. 예술성만 있기보다는 우리 미래의 삶과 산업에서 어떤 의미를 만들 수 있을지를 중요하게 다뤘지요. 미디어아트의 성격을 규정하는데 ‘상호성’을 많이 이야기하지만, 저는 그것보다는 ‘참여’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트라이앵글’은 더 넓은 차원의 상호성, 즉 참여를 추구했었습니다.

SMB 네. 그러면 원래 계획은 이 워크숍을 통해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교류하고, 모아진 생각와 논의가 최종적으로 전시가 된다는 단계별 구상을 하셨던 거네요?

원광연 네. 워크숍 단계별로 소주제를 정해서 한번은 미래의 주거생활, 다른 한 번은 도시 생활, 또 다른 한 번은 의식주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었죠.

SMB 참여자들도 예술가, 과학자, 산업가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르며 구성되었고, 각자 준비한 자료를 발표하는 방식이었던거죠?

원광연 그렇죠. 그런데 당시 문서들을 보면서 재미있는 걸 하나 발견했는데요. 이렇게 워크숍이 끝나면 서로 관심이 생기는 작가, 연구자, 디자이너를 알게 되고, 그 사람과 협업에 관한 생각들이 떠오를 수 밖에 없잖아요. 저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넥슨에서 제안서가 들어왔었네요.

SMB 시대적 배경과 더불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자리 자체로도 열정이나 상상력의 뜨거움이 상상됩니다. 선생님께서는 ‘문화기술’1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고 알리기 시작한 연구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단어는 마치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처럼 들으면 알 것 같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모호하면서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단어인 것 같습니다. ‘문화기술’에 대하여 2000년대 초반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술과 문화가 생겨나고 그런 변화가 도시의 일상에 급속도로 퍼져나가던 시대적 배경과 연결지어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원광연 아마도 어느 시대에서건 우리는 바로 지금이 가장 큰 변혁의 시대라고 생각할 거예요. 밀레니엄 당시에 우리는 ‘지금 변화는 정말 어마어마해’라고 생각했었지만, 2022년 현재도 마찬가지로 생각합니다. 의외로 우리가 미래를 보려면 무엇이 변하는지보다는 무엇이 변화하지 않고 고유한 가치로 남아 있는지를 보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그게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점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고유의 가치를 기반으로 삼아, 거기에 변화를 실어서 미래를 보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문화기술’이라는 개념도 바로 그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고유의 가치는 예술과 인문학이라고 보고, 그걸 바탕으로 미래를 변화시키는 동력은 결국 과학기술이니까요. 과학기술이 접목되었을 때 우리는 올바른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은 모두 실질적인 차원의 문제들이고, 그 본질에는 우리가 미래를 만들어 가는데 예술 혹은 과학만 홀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예술과 인문학을 바탕으로 과학기술을 하나씩 쌓아가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SMB 일반적인 의미에서 비엔날레라는 제도나 향유의 방식 역시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2019년부터 시작된 팬데믹을 거치면서 일상 생활의 변화는 물론 글로벌한 차원에서 공통된 변화를 모두가 실감하고 있습니다. 비엔날레의 미래에 대해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을까요?

원광연 중요한 점은 콘텐츠와 콘텍스트라고 봅니다. 어떤 맥락에서 어떤 내용을 가진 작품인가. 그리고 한편으로 이 비엔날레의 제목과 내용에서 ‘미디어’에 관한 생각이 계속되어온 거잖아요. 결국 ‘미디어’가 무엇인지에 관한 고민이 더 필요할 것 같아요. ‘미디어’는 우리 인간과 외부환경 간의 인터페이스입니다. ‘미디어’가 없으면 우리가 직접 특정 환경에 들어가서 체험하고 알아가야 하는데, ‘미디어’가 중간자/매개자가 되어 이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고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 자체가 ‘미디어’인거죠. 그 ‘미디어’가 앞으로 어떤 성격으로 어떤 역할을 할 것 인가에 주목해야 할 것 같아요.

20년 전에 첫 행사를 개최하면서 키워드로 삼은 것이 ‘탈출’과 ‘회귀’였습니다. 컴퓨터 키보드를 들여다보니까 여기 ‘리턴키’하고 ‘에스케이프키’가 있는 거예요. 두 키 사이에 모든 키가 들어있죠. 양 극단에 있는 에스케이프 키와 엔터키를 주목했어요. 기술의 발전이 단순히 미래만 보고 가는 게 아니고 계속 탈출과 회귀를 통해서 미래를 향한다고 생각합니다.

SMB 회귀 작용을 통한 발전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을까요?

원광연 네. 그러니까 기술은 그것을 정의하는 개념상 앞으로 갈 수밖에 없죠. 옛날에 했던 걸 다시 만들어내는 것은 기술이 아니니까요. 다만 앞으로 향하는 기술 발전의 원동력은 누군가 이야기했듯이 인간의 욕망이거든요. 인간의 욕망을 받쳐주는 것은 단순히 미래만이 아니라 과거에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발전의 원동력은 실제로 현재, 미래, 그리고 과거이겠죠. 그런 의미에서 기술도 회귀하며 과거에서 교훈과 기반을 얻고 발전합니다.

SMB 그런 의미에서 예술과 기술을 비슷하게 생각해볼 수 있겠네요.

원광연 우선 그걸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속도의 개념. 우리가 산업혁명과 같은 과거의 혁신에서 경험과 기술 그 자체보다는 개념과 세계관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보아야 하는데요. 그러니까 공간, 시간, 속도의 개념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주목해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 인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셔야겠죠.

SMB 여기서 말씀하시는 속도 개념의 변화는 물리적이고 수량적인 변화와는 다른 층위를 의미하시는 거죠?

원광연 물론. 가령 기술 발전적인 측면에서 보면 우리가 과거에 속도를 100 만들었는데, 지금은 200 이다, 혹은 250 으로 갈 수 있느냐를 고민하지만, 그러한 정량적인 혁신과 발전이 어느 한계치에 도달하면 개념이 바뀌게 되거든요. 우리는 바로 그 바뀐 개념에 주목해야 할 것 같아요. 시간도 마찬가지죠. 예를 들면 지금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죠? 시간의 흐름을 우리가 알고 있는 시계에서 분, 초와 같은 은유로 사용한 역사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 그전에는 해, 달, 별과 같은 자연계의 움직임으로 시간을 봤죠. 인공적으로 시간을 인식한 지는 불과 2-300년밖에 안 되는 거거든요. 이런 개념이 앞으로 또 다른 방식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거죠.

SMB 그런 변화를 생각해보기 위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감각을 탐구해보는 것도 방법이겠네요?

원광연 그렇겠죠? 마셜 매클루언(1911-1980)은 미디어를 우리 감각의 연장이라고 얘기했잖아요. 미디어가 앞으로 또 어떤 방향으로 크게 변화할 거냐에 따라서 우리의 감각도 거기에 맞춰 변화하겠죠.

SMB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정체성에 관해 이야기할 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술과 예술의 관계를 이분법적인 정의에만 묶어 놓고 생각합니다. ‘문화기술’이라는 용어는 그런 면에서 여전히 유효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원광연 저는 정말 우연한 기회에 운이 좋아서 미디어_시티 서울에 참여하는 영광을 가졌었고,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과학자였던 제가 예술과 문화에 관심을 두고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된 결정적인 계기이자 전환점이 되었고요. 저로서는 정말 좋은 추억이자 자랑스러운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가 계속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이미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진행해왔지만, 앞으로도 우리에게 미래를 제시해주고, 미래에 대한 꿈을 시민들에게 보여주는 차별성 있는 비엔날레로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인터뷰 일자: 2022년 2월 18일


  1. 문화기술(CT, Culture Technology)은 문화 산업 발전을 위한 기술을 통칭하는 용어로 ‘문화콘텐츠 기술’ 혹은 ‘문화산업 기술’로도 불리운다. 1995년 원광연 교수가 처음 사용하였으며, 문화콘텐츠 기획과 상품화 과정에서 문화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사용되는 모든 기술, 특히 인간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게 하는 기술로 설명된다. 

오늘
|
어제
|
스크린은 보호할 가치가 있습니다. 또는 스크린을 보호할 가치를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