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공공성

박혜연
제1회 도시와 영상 《1988-2002》 ’아트비전 시티비전’. 광화문 조선일보 사옥, 1996. 홍순철 제공

본 연구에서 박혜연은 지난 비엔날레 데이터를 통해 역사를 다시 읽고 새롭게 해석하는 메타-비평을 시도한다. 제1회 도시와 영상 《1988-2002》(1996)과 미디어_시티 서울 2000 《도시: 0과 1사이》에서 어떻게 지난 시도들이 비디오 아트에 내재된 공공적 성격을 주목하고, 예술 이미지가 제도의 한계를 넘어 다르게 보고 생각하기 위한 매개가 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이와 같은 사유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정체성으로 이어지는 것의 중요성을 살펴본다.

박혜연은 현대미술을 연구하는 미술사학자이자 비평가로, 경희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70년대의 초기 비디오아트, 퍼포먼스, 제도비판 미술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며, 관련한 글이 『아트포럼』, 뉴욕 뉴 뮤지엄, 도쿄 게이오대학 미술센터, 갤러리 현대,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서양미술사학회, 미술사와 시각문화 등에서 출판되었다. 미국 예일대학에서 역사학 학사를,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동아시아학과 미술사학 석사를, 뉴욕시립대학교에서 미술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구명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공공성

분류 에세이

에디션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사전프로그램(프리비엔날레)

저자 박혜연



누구에게나 ‘첫 시작’은 중요하기 마련이다.

한 개인의 인생에 있어서도 첫 시도는 서툴기도 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한다는 흥분과 두려움이 혼재한다. 그러나 그러한 ‘처음’들이 차곡차곡 쌓여 한 사람의 역사를 만들고 그 사람의 인생 자체가 된다.

이러한 ‘첫 시작’의 중요성은 개인 뿐만 아니라 공공적 성격을 지니는 기관, 특히 국공립 미술관에도 적용될 수 있다. 내년에 개최될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SMB13)를 앞둔 오늘의 시점에서 그 첫 시작을 되짚어보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글에서는 SMB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1996년에 개최된 제1회 도시와 영상 《1988-2002》과 2000년에 열린 미디어_시티 서울 2000 《도시: 0과 1 사이》를 돌아보며, 특히 두 전시가 화두로 삼았던 ‘영상미술의 공공성’에 중점을 두고 서술하려 한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첫 시작은 1996년에 개최된 제1회 도시와 영상 《1988-2002》 전시이다. 이 전시 도록의 첫 장에는 화려한 서울의 야경을 배경으로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의 불빛과 그 사이에 우뚝 서 있는 고층 건물들의 단면에 부착된 전광판에 투사된 참여작가들의 영상 작품이 마치 하늘을 날아다니는 듯 연출되어 있다. 실제로 이 전시에서는 서울을 비롯한 5개 도시의 14개 도심 전광판에 참여작가들의 영상 작품을 편집한 약 90초 이내의 영상이 상영되어 바쁘게 도심을 오가던 시민들의 눈길을 붙잡았다.1

LG화재, 에이스 침대, 코닥, 롯데백화점, 맥도날드 등의 상업 광고가 연속적으로 흘러나온 후, 광화문 코리아나 호텔, 신촌 그랜드백화점, 종각 서원 등에 부착된 전광판에 홍순철 작가의 〈도시폭포〉 (1996) 영상을 시작으로 세차게 쏟아지는 폭포와 변기 속에 소용돌이치는 물 사이로 안경 쓴 남자의 얼굴이 양옆, 위, 아래로 나타났다 사라지고, 이윰 작가의 〈캡슐 피플〉(1996)과 이원곤 작가의 〈Silkroad Memorial-under the linden〉(1986/1989) 영상과 박현기 작가의 〈THE BLUE DINING TABLE〉(연도 미상) 영상 작품 중 작가가 두 발 사이에 돌멩이를 놓고 천천히 굴리는 영상이 빠른 속도로 교차 편집되어 상영된다.

1996년 당시 시중의 은행에는 대기 중인 고객들에게 은행의 상품을 홍보하고 은행에서 지켜야 하는 매너를 전달하기 위한 홍보 TV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아트비전 시티비전’이라는 제목으로 기획된 이 프로젝트는 은행 정보 TV에서 상영되었다.2 이러한 기존 콘텐츠 사이에 작가들의 영상 작품이 1시간당 한 번씩 상영되었다. 제1회 도시와 영상 《1988-2002》 전시는 단순히 미술관 안에서만 펼쳐지는 전시가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드나드는 장소에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매우 신선한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제1회 도시와 영상 《1988-2002》 전시를 기획한 이섭 큐레이터는 이러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이유로서 영상 작품이 지니는 ‘공공성’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설명하였다. 이섭에게 있어 ‘공공성’이란 “예술 행위가 일상 행위와 괴리되지 않는 지점”을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이었으며, 작품을 생산하는 작가들이 영상을 단순히 미술의 한 장르로서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생활하는 공공장소에서 상영함으로써 예술과 일상의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3

이 전시의 공동 기획자였던 김진하는 전시 도록에 실린 「도시와 영상전을 기획하며」 글에서 산업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의 전환기에 매스 미디어를 통해 영상이 사람들의 일상에 침투하게 되었으며, 방송에서 송출하는 영상은 엔터테인먼트와 상업적인 소비 욕망을 대중에게 주입하게 되었다고 서술한다.4 결과적으로 매스 미디어는 사람들의 소통방식과 사고까지 조절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음을 지적하며, 이러한 매스 미디어의 영상과는 반대되는 지점에서 영상미술의 의미를 논하고 있다.

영상미술은 비제도화의 기능을 갖는다는 점에서 생산적이다. 영상 미술 언어는 과학과 기술에 의한 미디어에 의존하더라도 우리에게 다르게 보고 생각하는 방식을 요구한다. ··· 영상미술은 어떤 사건이나 대상을 그 소재로 하더라도 그것을 작가의 사유나 감각으로 특화시킨다. ··· 더불어 미술 언어는 ··· 사람들의 개체성과 개별적인 의식들을 포착해내고 반영하여, 한 시대의 삶의 전형성과 도시 공간 내에서의 복합성을 더욱 깊이 있게 사고하게 한다. 그리고 자기표현의 확장과 도전적인 실험 정신, 수평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사회 내에서 일정한 가치를 확보한다. 5

위의 서술에서 인상적인 것은 영상미술의 기능을 ‘비제도화’라고 한 지점이다. 즉, 대중매체인 방송을 통해 유통되고 소비되는 스펙타클하고 소비지향적인 문화를 ‘제도권’ 영상문화로 상정하고, 그러한 문화와는 반대되는 지점에서 영상 미술의 개별성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나아가 김진하는 영상 미디어의 시대를 맞이하며 이러한 전시를 기획하게 된 의도에 대하여 “영상 작가들의 시점에서 서울의 삶과 문화적인 정체성을 반영해 보기, 그리고 전적으로 작가의 개인적이고 섬세한 관찰에 의한 일상성과 시각성을 찾아보기”라고 서술한다.6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첫번째 지향점이라 할 수 있는 영상미술의 ‘공공성’이라는 화두는 4년 후인 2000년에 열린 미디어_시티 서울 2000 《도시: 0과 1사이》의 주요한 다섯 개 프로젝트 중 ‘시티 비전/클립 시티’와 ‘지하철 프로젝트’로 이어진다. 미디어_시티 서울 2000 《도시: 0과 1사이》은 총 세 개의 전시로 구성되어 진행되었다.7 그중 하나는 서울역사박물관(구 서울시립박물관)에서 열린 본 전시라 할 수 있는 ‘미디어 아트 2000: 이스케이프’로서, 바바라 런던과 제레미 밀러가 공동 큐레이터로 초빙되어 당대만 해도 한국에 소개된 적 없었던 비토 아콘치, 로리 앤더슨, 조앤 조나스와 같은 초기 미디어아트의 주요한 작가들과 신예로 떠오르고 있었던 매튜 바니, 토니 울슬러, 빌 비올라, 더글라스 고든 등과 같은 서구의 영상 미술가들의 작품을 국내 관객이 직접 경험할 수 있게 한 최초의 전시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또 다른 주요 전시는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가 기획한 ‘시티 비전/클립 시티’이다. 이 전시에 초청된 25명의 작가들은 상업 광고와 같은 상영시간의 단위, 즉 20초에서 50초 길이의 짧은 비디오 작품을 제작하였고, 이 작품들은 베타 테이프로 옮긴 후, 서울 시내의 42개 전광판에서 상영되었다.8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상업 광고를 방영하는 대형 전광판을 공적인 영상을 상영하는 공간으로 치환하는 것이었다. 피필로티 리스트, 샹탈 애커만,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알렉산더 클루거와 같은 쟁쟁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상영하였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나, 실제로 이러한 영상을 전광판에 상영하였다는 사실만으로 과연 전광판이라는 공간이 상업적인 용도에서 공적인 용도로 변화되었다고 볼 수 있을지 다소 의문스럽다.

필자는 ‘시티 비전/클립 비전’보다 유병학이 기획을 맡은 ‘지하철 프로젝트’가 “예술의 공공성과 미디어로서의 도시의 역할을 부각”하려는 미디어_시티 서울 2000의 기획 의도와 훨씬 더 잘 맞아떨어졌다고 본다. 유병학의 글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는 ‘일상세계/미술세계’라는 구분을 해체하기 위해 기획되었으며, 서울 시내 지하철역이라는 공간을 ‘출입과 출구’라는 ‘두 개의 흐름이 교차하는 양방향성의 의미’를 갖는 공간으로 정의하고, 이것을 ‘비디오나 컴퓨터의 입력과 출력’에 비유하는 흥미로운 설정을 드러낸다.9

유병학은 순환선인 서울 지하철 2호선을 ‘닫혀진 원이 아니라 열려진 타원, 즉 다른 지역으로도 확장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2호선이 지나가는 43개 지하철역 가운데 다른 노선과 교차하는 12개 지하철역을 전시 장소로 선택하였고, 미디어_시티 서울 2000의 주요 전시 공간인 서울역사박물관과 서울600년기념관(구 서울시립 경희궁분관)에서 가까운 지하철 5호선의 광화문역을 포함하였다.10

‘지하철 프로젝트’는 ‘퍼블릭 퍼니처’를 주요 개념으로 내세워, ‘기능적이고 미학적인 것의 결합’을 추구하고, 모든 작가들이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제작한 작품들로 장소 특정적인 성격을 가진다.11 유병학은 이 작품들이 “지리학적인 노선을 따르면서 지하의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미디어’”로서 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교통수단으로 사용하는 지하철이라는 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발생시킨다고 보았다.12 이 프로젝트는 영상과 같은 미디어 작품만이 아니라, 자개를 사용한 벽화나 시민들이 직접 앉아 쉬어갈 수 있는 의자의 기능을 가진 조형물 형태까지 다양한 매체의 작품으로 구성한 점이 눈에 띈다.

(좌) 이수경, 〈지하철 2호선〉, 2000. 비디오 설치. 90 × 120 cm. 2호선 시청역. 2000. (우) 홍순철, 〈도시폭포〉(1996) 설치를 위한 전시장 연결에 관한 구상도.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작가 제공

이수경의 〈지하철 2호선〉(2000)은 지하철이 지상에서 지하로 들어가는 순간, 통상적으로 암흑의 공간만 보게 되는 시민들에게 지하철 전동차 기사의 시선으로 보는 풍경을 선사한다. 작가는 지하철 전동차 조정실의 기사 옆에 앉아 지하철 2호선 전 구간을 맴도는 지하와 지상의 풍경을 촬영한 후, 그 비디오 이미지 하단에 전동차가 연속적으로 달리는 수직단면을 컴퓨터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제작한 것을 몽타주 한 영상을 동대문 운동장, 시청역 신도림역, 교대역, 잠실역에 설치하였다. 작가의 의도대로 이 작품은 “전동차의 시점에서 ··· 보여지는 것과 감춰진 것”을 드러냄으로써 ‘0과 1 사이’라는 미디어_시티 서울 2000의 주제와 잘 맞아떨어진다.13

박지아의 〈비단길〉(2000)은 잠실역 2호선에서 8호선으로 이동하는 길이 150여 미터의 환승 복도 천장에 가로의 지지대를 사용하여 십여 대가 넘는 29인치 TV 모니터를 설치하고, 화면을 제외한 TV 모니터 몸체를 백색 인조 모피로 덮었다. 각각의 TV 모니터 화면은 황병길의 ‘비단길’의 악보 형식을 도입하여 운율에 맞게 자연의 풍경을 송출하였다.14 이 작품은 지루한 이동의 공간으로 인식되는 복도를 지나는 시민들에게 새로운 시청각적 자극을 선사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성공적인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미디어_시티 서울 2000의 전시 도록 서문을 읽다 보면, 당시 인터넷의 출현과 확장으로 인한 ‘디지털 혁명’이 큰 화두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15 현재의 시점에서 바라보면 다소 촌스럽게 느껴지는 ‘0과 1’이라는 주제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전시에서는 디지털 기술의 양방향성이 우리의 삶에 획기적인 전환을 이뤄낼 것이라는 기술-유토피아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 물론 제1회 도시와 영상 《1988-2002》 전시에서 소비지향적인 문화를 생산하는 주체로서 비판의 대상이 된 매스 미디어로서의 방송에 비해, 인터넷으로 익명의 다수가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공론의 장으로 진입하게 된 것은 가히 ‘혁명적’인 시대적 전환으로 느껴졌을 법도 하다.

그러나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은 인터넷과 SNS라는 디지털 미디어를 결코 긍정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쳐준다.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많은 이들이 마치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처럼 직접 민주주의의 장으로 여겼던 인터넷은 가짜뉴스와 거짓 선동, 혐오의 발언이 넘쳐나는 공간으로, 유튜브와 구글의 알고리즘은 개인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만을 반복적으로 노출하여 오히려 편파적 사고를 부추기고, 화려한 소비지향적 삶을 끊임없이 전시하고 촉구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반면, 인터넷이 가진 순기능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 글을 쓰기 불과 열흘 전 일어났던 12월 3일 저녁 계엄이 선포된 직후 국회의사당에 진입했던 군인들이 예상만큼 빠르게 국회를 폐쇄하고 상황을 진압하지 못했던 것은 국회 정문 앞으로 빠르게 달려간 시민들이 핸드폰으로 촬영하며 실시간으로 전달했던 소식이 인터넷 공간에 퍼져나가면서 기자와 사람들이 모여든 것이 큰 이유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인터넷의 양면성은 새로운 기술 자체가 사회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누가, 어떻게, 어떤 의도로 사용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현상을 읽고 사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예술의 향유가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상기시킨다.

이러한 시점에서 제1회 도시와 영상 《1988-2002》 전시와 미디어_시티 서울 2000 《도시: 0과 1사이》이 지향했던 ‘공공성’이라는 화두를 향후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서 계속 이어나가고 발전시켜 나가기를 소망한다. 오늘날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소위 ‘블록버스터’급 전시들은 일반 관람객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거대한 미디어아트 월에 펼쳐지는 현란한 영상이나, ‘팀랩(TeamLAB)’과 같은 몰입형 설치가 대부분으로, 관객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시청각적 자극에 매몰되어 화려한 영상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기 바쁠 뿐, 자신이 바라보는 영상과 비판적 거리를 두고 그것의 의미를 사유할 수 있는 시공간을 찾기 어렵다.

(좌) SMB08 《귀신 간첩 할머니》 기자간담회. 서울시립미술관. 2014 (우) SMB12 《이것 역시 지도》 기자간담회 및 프리뷰 전경. 서울시립미술관. 2023. 사진: 글림워커스

우리가 살아가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는 증강현실, 가상현실, 인공지능과 같은 신기술에 열광하며, 단순히 그러한 신기술을 예술에 접목하는 것만으로 ‘혁명적’인 시청각적, 공감각적 변화인 것으로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한편, 1990년 월드와이드웹이 등장한 지 34년이 지난 오늘날 사람들은 맹목적인 기술 중심적 사고와 기술 낙관론이 아둔한 것이라고도 알고 있다. 미래의 ‘미디어아트’가 단순히 신기술의 적용이라는 수단으로만 전락하지 않고, 디지털 플랫폼의 알고리듬에 맞춰진 ‘개인화’의 빈틈을 파고들어, 관객들에게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소비지향적 문화를 비판적으로 사유하게 하는 역할과 경험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며 글을 맺는다.


  1. 제1회 도시와 영상 《1988-2002》 큐레이터였던 이섭에 의하면 당시 전광판에 상영되는 모든 영상은 90초가 조금 안 되는 길이로 편성되어 있어서 이에 맞추기 위해 프로젝트 참여작가 10인의 작품(이미지와 영상)을 모아 90초 이내로 편집한 후, 영상이 담긴 테이프를 2시간에 한 번씩 전광판에서 재생하였다고 한다.
    이섭과의 대화 「미디어아트 = 공공성」, 『서울비디어시티비엔날레 1996-2022 보고서』 (서울: 서울시립미술관, 2022), 46. 

  2. ‘아트비전 시티비전’은 농협, 기업, 상업, 외환, 조흥, 제일, 하나, 한일, 8개의 은행 정보 TV에서 상영되었다. 

  3. 앞의 글, 45-46. 

  4. 김진하, 「도시와 영상전을 기획하며」, 『도시와 영상 Seoul in Media, 1988-2002』 전시 도록 (서울: 서울시립미술관, 1996), 6-7. 

  5. 주 4 참조. 

  6. 주 4 참조. 

  7. 송미숙, 「서문」, 『미디어_시티 서울 2000』 전시 도록 (서울: 미디어_시티 서울 조직 위원회, 2000), 13. 

  8. 앞의 글, 15. 

  9. 유병학, 「지하철 프로젝트」, 『미디어_시티 서울 2000』 전시 도록, 259, 261. 

  10. 주 9 참조. 

  11. 유병학, 앞의 글, 264. 

  12. 주 11 참조. 

  13. 이수경, 「지하철 2호선」, 『미디어_시티 서울 2000』 전시 도록, 268-269. 

  14. 이경, 「박지아의 비단길」, 『미디어_시티 서울 2000』 전시 도록, 271. 

  15. 송미숙, 앞의 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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